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3월20일]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1602년 3월20일, 네덜란드 동인도회사(VOC)가 특허장을 받았다. 외국과의 전쟁선포에서 종전조약 체결권, 화폐발행권까지 누린 VOC의 설립자본금은 650만길더. 1년3개월 전에 설립된 영국 동인도회사보다 10배나 많았다. 신생공화국 네덜란드가 VOC에 권한을 몰아준 것은 아시아 교역에 대한 열망이 강했기 때문이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감시를 피해 인도로 보낸 탐험대가 후추를 가득 싣고 돌아와 배당률 400%를 기록한 후 무역회사가 난립하며 과당경쟁이 빚어지자 통합회사로 탄생한 게 VOC다. VOC의 최대 돈벌이는 아시아 내부 교역망을 통한 중계무역. 인도산 면직물을 일본에서 은과 구리로 바꾼 뒤 금과 은의 교환비율이 1대6(유럽은 1대13)으로 낮았던 중국에서 금으로 교환해 인도에서 후추를 사서 유럽에 파는 중계무역으로 막대한 부를 쌓았다. 중국과 일본산 도자기도 이때 유럽에 퍼졌다. 전성기에 직원 5만명과 병력 2만명을 거느렸던 최초의 거대 주식회사인 VOC의 영광은 200년을 넘지 않았다. 소액주주들을 내쫓고 회사를 장악한 대주주들이 연간 15~50%씩의 고배당을 받아가며 재원을 고갈시킨 탓이다. 결국 아시아 상권은 영국으로 넘어가고 VOC도 1798년 빚더미 속에서 해산되고 말았다. VOC의 최대 수혜자는 일본. 나가사키의 VOC상관이 전파한 난학(蘭學) 덕분에 서구문물을 일찌감치 접하며 1854년 미국의 페리 함대에 의해 반강제 개항될 때까지 내실을 다질 수 있었다. 반면 조선은 기회를 놓쳤다. VOC는 제주도에 표류해 조선에서 14년간 억류 끝에 탈출했던 하멜의 보고서에 따라 1,000톤급 상선 ‘꼬레아호’를 건조하며 조선과의 직교역을 추진했으나 성사되지 않았다. 조선을 견제하려던 일본의 방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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