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바람이 불던 지난 22일 서울시 38세금징수과 징수2팀 소속 조사관 3명이 탄 차량이 서울 마포구의 한 아파트 단지에 들어섰다. 이 차에는 서울경제신문 취재진도 함께 타고 있었다. 징수팀은 운전석 쪽 앞바퀴에 족쇄가 채워진 한 외제차를 찾고 있었다. 차종은 도요타 렉서스였다. "차량 여기 있네. 없을 리가 있나!" 김상협(가명) 조사관이 말하자 내내 굳은 얼굴이던 동료 조사관들도 이내 표정을 풀고 안도했다. 이 차량에 무슨 일이 있었을까? 사정은 이렇다. 이 차량은 3,600만원의 지방세를 체납한 한 40대 여성의 소유로 징수팀이 지난달 찾아내 족쇄를 채워 압류조치를 해뒀던 물건이다. 체납 여성은 그러나 차량 압류 이후에도 조사관의 연락을 받지 않고 회신도 하지 않아 시는 이날 차량을 견인하기로 결정하고 출동길에 오른 것이었다. 그렇게 연락이 닿지 않던 체납자는 담당 조사관이 현장으로 가는 길에 마지막으로 확인차 시도한 연락에서 거짓말처럼 전화를 받았다. 그리고는 조사관들에게 "차량을 벌써 가져가지 않았느냐"며 "차량이 없다"고 주장했다. 만약 차량이 정말 사라졌다면 큰일이었다. 압류물품의 소재를 확인할 수 없어 징수 자체가 물거품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다시 처음부터 압류 대상 물품을 파악하고 소재를 찾아 나서야 하지만 성공 가능성은 장담할 수 없다. 조사관들이 긴장했던 이유다.
그런데 막상 도착한 곳에 압류 차량은 그대로 있었다. 동행한 이희숙(가명) 조사관은 "실제 차를 어디에 주차했는지 몰랐을 수도 있고 혼란을 주기 위해서일 수도 있다"며 "이유는 본인이 알 것"이라고 말했다. 조사관이 다시 한번 연락해 상황을 이야기하자 체납자는 그제서야 연말까지 지방세를 납부하겠다고 약속했다. 견인은 보류됐다.
서울경제신문 취재진이 이날 하루 동안 동행한 서울시의 체납징수 현장은 숨기는 자와 찾는 자 간 치열한 두뇌 싸움의 연속이었다. 세금을 내지 않으려는 이들의 회피 이유와 전략은 다양하고 치밀했다. 때로는 거짓말도 서슴지 않았다.
실제로 마포구 체납자의 '허허실실 전법'도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조사관이 처음 연락이 닿았던 당시 체납자의 남편은 "차량을 갖고 전국을 떠돌며 노숙하고 있다"면서 "이미 체납자와는 이혼한 상태이고 차량을 압류하고 싶으면 전라도의 강이나 바다에 빠뜨릴 테니 와서 찾으라"고 큰소리를 쳤다. 징수팀이 조사를 해보니 이들은 이혼한 적도 없고 체납자 명의의 차는 주소지인 마포구 아파트 단지에 주차돼 있었다. 헤어지고 노숙한다던 남편은 부인과 함께 해외를 드나들었다. 전화통화를 했던 이날도 이들은 동남아시아의 한 나라에 머물고 있었다.
이 같은 체납자들의 도피와 거짓 해명을 밝혀내는 것이 징수팀의 몫이다. 이에 징수팀의 현장활동은 일반적인 세무공무원보다 탐정에 더 가깝다. 실제 이날 징수팀은 한 체납자의 현황을 파악하기 위해 마포구의 한 연립주택을 불시방문하기도 했다. 1,000만원의 시세를 체납하고 파산신청을 한 남성의 전 부인 소유 아파트다. 체납자는 파산 후 이혼하고 지방에 혼자 살고 있다고 주장하며 결손 처리를 해달라고 요구하는 상황. 징수팀은 그러나 이 남성이 전 부인과 함께 사는 정황을 파악하고 전 부인의 아파트를 불시방문한 참이었다. 타 관공서에 전 부인이 아직 전 남편과 함께 지낸다는 사실을 암시하는 기록이 남아 있었던 것이다. 체납자의 전 부인은 주택 2채를 보유하고 있다. 만약 함께 산다는 점을 입증하면 가택 수색을 통해 동산 압류를 할 수도 있는 상황이다.
조사관들이 계량기를 살펴보니 돌아가고 있었다. 사람이 사는 것은 확실했다. 다만 정작 문을 두드리자 아무도 없었다. 관리인의 증언이라도 받기 위해 6층부터 1층까지 내려오며 관리인을 찾았지만 관리직원은 근무하지 않는 듯했다. 불시 현장확인은 수포로 돌아갔다. 다만 징수팀은 인근에 있는 전 부인의 상가를 찾아 전 부인의 연락처를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어설픈 접근이나 연락은 체납자에게 대응 기회만 만들어줄 수 있기 때문에 징수팀은 이 건의 경우 추가로 현장방문을 하고 대응방안을 찾기로 했다.
징수팀은 이어 30억여원을 체납한 폐업 법인의 차량 소재를 찾기 위해 이미 수년 전 퇴직한 전 운전기사의 집을 방문하기도 했다. 한 가지 작은 단서라도 발견해 차량을 찾고 압류하기 위한 것이다. 서대문의 골목을 올라 주택가를 찾아갔지만 역시 전 운전기사를 만날 수는 없었다.
김 조사관은 "체납 한 건을 징수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발품을 팔아야 하고 발품을 팔기 전에는 자료조사를 철저히 하며 공을 들여야 한다"며 "요즘에는 세무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치밀하게 체납하는 경우가 많아 징수가 더 어려워지고 있다"고 전했다.
실제로 최근에는 체납자의 재산은닉 수법이 점점 고도화되고 있다. 가족 대신 추적이 어려운 지인에게 자신의 부동산 명의를 넘기고 대신 해당 부동산에 근저당권을 잡는 방법으로 재산권을 유지하거나 지자체의 압류범위를 꿰뚫고 재산을 이리저리 옮기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과거에는 대여금고에 귀중품을 많이 숨겼지만 최근에는 대여금고 압류가 많이 알려지면서 이용이 대폭 줄었다. 이 조사관은 "최근에는 대여금고를 압류해 강제 개방해도 텅텅 비어 있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신탁회사도 체납자들이 재산을 지키는 주요 수단이었지만 이 역시 지자체가 압류할 수 있게 되자 이용이 줄었다는 게 각 지역 세무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특히 일부 체납자들은 체납 기간이 10년을 훌쩍 넘어갈 정도로 징수는 쉽지 않다. 최근 행정자치부와 각 지자체가 공개한 고액·상습체납자 명단 중 전두환 전 대통령의 동생인 전경환 전 새마을운동 중앙본부회장은 1996년부터 주민세를 체납한 것으로 나타났다. 거의 20년째다. 정태수 전 한보그룹 회장은 1997년부터 체납을 하고 있다. 현재 정 전 회장의 경우 해외 체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다고 지자체가 눈 뜨고 호락호락 당하는 것만은 아니다. 10월 서울시 38세금징수과는 2억8,700만원을 체납한 전직 중소 섬유회사 대표의 집을 강제 개방했다. 체납자 부인 명의의 용산구 고급 아파트에서 금괴를 포함해 수억원 상당의 현금과 귀중품을 압류했다. 돈이 없다며 세금을 내지 않던 체납자는 금괴를 압류하자 곧바로 2억8,000만원의 체납 세금을 납부했다. 지난해 9월에는 고액·상습체납자인 최순영 전 신동아그룹 회장의 자택 문을 따고 들어가 명품시계와 진주목걸이·현금 등 총 1억3,000만여원의 동산을 압류하기도 했다.
물론 모든 체납자가 의도적으로 세금을 내지 않는 것은 아니다. 형편이 어려워져 내고 싶어도 못 내는 경우도 있다. 경기가 좋지 않을수록 이 같은 종류의 체납자가 늘어난다. 최근 2년간 전국의 체납액이 늘어나는 것도 이 같은 경기부진의 영향이 크다. 징수팀이 이날 들른 영등포의 한 체납자도 이 같은 부류에 가까웠다. 이 남성은 중소기업을 운영하다 2011년 문을 닫게 되면서 16억원의 지방세 체납이 발생했다. 징수팀은 체납 사실을 직접 알리는 한편 체납자의 자산 현황을 가늠하기 위해 거주 아파트를 찾은 길이었다. 집은 비어 있었다. 다만 징수팀은 적어도 체납자의 부동산이 호화로운 수준이 아니라는 점을 파악할 수 있었다. 김 조사관은 "폐업 전 이 분의 거주 주소는 서초구의 고급 브랜드 아파트였다"며 "좀 더 조사해봐야 하지만 폐업 이후 형편이 어려워진 것은 사실인 듯하다"며 안타까워했다. 동료 조사관은 "가끔 체납으로 형편이 어려워진 분들을 조사하면서 그분들의 자녀들도 조사할 때는 마음이 좋지 않다"고 전했다.
현장 세금징수 조직은 지자체들이 악성체납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제도적으로 보완해야 할 부분이 적지 않다고 지적한다. 자동차보험 명의 문제가 그렇다. 차량 압류를 위해서는 보험가입자 명의를 기반으로 소재파악에 나서는데 현재는 폐업 법인의 명의로도 보험 가입이 가능하다. 압류를 피하는 데 악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징수2팀도 압류 대상 차량이 폐업 법인의 이름으로 보험을 갱신하고 있어 소재지 파악에 애를 먹고 있다.
체납자 출입국 자동금지 한도금액도 조정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된다. 임출빈 서울시 38세금징수과 과장은 "국세의 10%인 지방세 체납자도 국세와 마찬가지로 5,000만원이 넘어야 출국이 금지된다"며 "지방세는 한도액을 다소 낮춰 출금 조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