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로터리] 우리의 톨레랑스

자기에게 이롭게만 받아들이는 아전인수는 기실 사람의 감춰진 본심이다. 그래서 우리 사회에는 이를 자조하는 듯한 여러 가지 이야깃거리도 많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스캔들’은 이미 옛말이 됐고 ‘내가 하면 투자, 남이 하면 투기’를 위시해 온갖 ‘내가 하면 남이 하면’ 시리즈가 넘쳐난다. 이 같은 자기 합리화나 이중잣대로 판단하는 예는 개인에 그치지 않는다. 지연ㆍ학연ㆍ혈연을 내세운 집단이나 이해를 같이하는 조직 사이에서는 집단이기주의와 같은 형태로 드러난다. 더구나 상호이익이 엇갈리는 경우라면 대립과 반목으로 번지기 십상이다. 수 해 전, 자신과 다르다는 이유로 남을 틀리다고 배척하는 우리 사회에 톨레랑스, 즉 서로 인정하고 공존하자는 관용의 정신을 소개했던 홍세화씨의 책 ‘나는 빠리의 택시 운전사’가 대중의 큰 공감을 산 적이 있다. 저자는 톨레랑스를 용인(容認), 나아가 화이부동(和而不同)이라고 말하면서 남과 동화되지 않으면서도 평화롭다는 의미로 되새겼다. 이는 논어의 “군자는 화합하지만 부화뇌동하지 않고 소인은 부화뇌동하지만 화합하지 않는다”는 말과도 일맥상통한다. 우리 사회는 어제와 오늘이 다르게 크게 바뀌고 있다. 부지불식간에 고령화시대에 불쑥 접어든데다 정치ㆍ경제ㆍ문화ㆍ교육 등 모든 부문에서 예측할 수 없는 변화를 맞고 있다. 복잡다단해진 사회구조 속에서 새로운 소외계층도 생겨났다. 보호돼야 할 어린이, 노인이나 선ㆍ후천적 장애인이 많아졌다. 경제성장에도 불구하고 산업과 노동시장의 구조가 바뀌면서 실업자와 저소득층도 늘었다. 3D 직업에 종사하는 외국인 노동자의 증가세도 가파르다. 경쟁사회에서 사람들은 여느 때보다도 사적인 이익에 민감하게 됐다. 세대와 계층을 초월해 공유했던 문화는 찾아보기 힘들고 벌어진 틈은 메울 길이 없어 보인다. 톨레랑스의 정신을 실천하기에는 너무 멀리 와버린 것도 같다. 필자는 톨레랑스를 ‘관점의 변화’라는 측면에서 다가가고 싶다. 먼저 나와 다른지를 구별해보는 것이다. 군자는 대범하나 소인은 근심할 일이 많다 했거늘, 중요한지 사소한지를 판단해 버릴 것은 버리자는 것이다. 역지사지는 물론이요, 나는 어떠한지 스스로에게도 시선을 돌려봐야 한다. 사람살이는 경쟁이 아니라 공생임을 잊지 말자. 도움이 필요한 약자에게는 따뜻한 손을 내밀어야 한다. 나와 다른 생각과 행동을 끌어안아야 한다. 여과 없이 무조건 용납함으로써 남과 다른 차이를 없애자는 것이 아닌, 차이를 인정하되 그로 인한 갈등을 최소화하려는 노력이 톨레랑스이자 더불어 사는 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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