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5월27일] 밴더빌트

[오늘의 경제소사/5월27일] 밴더빌트 권홍우 코넬리어스 밴더빌트(Cornelius Vanderbilt). 미국의 부호 역대 2위(1위는 록펠러)다. 1877년 사망시 유산은 1억달러. 요즘 가치로 1,432억달러에 해당하는 돈을 남긴 그는 기회포착의 천재라는 칭송과 악덕 기업가, 투기꾼의 상징이라는 상반된 평가를 받는 인물이다. 초년의 그를 지배한 것은 가난. 1794년 5월27일 뉴욕에서 빈농의 9남매 중 4남으로 태어나 11세 때부터 돈을 벌었다. 16세에 100달러짜리 배로 사업을 시작, 1812년 미영전쟁에서 군사물자 보급을 맡아 부를 쌓았다. 허드슨강 최대의 범선업자로 성장한 23세 무렵, 그는 남의 밑으로 들어갔다. 증기선을 익히기 위해서다. 그는 초저가 운임으로 승객을 싹쓸이했다. 경쟁자인 풀턴 측이 제기한 소송에서도 이겼다. ‘증기선의 아버지’ 풀턴이 세운 회사는 얼마 지나지 않아 망해버렸다. 독립을 선언한 그에게 사장과 경쟁업체는 뒷돈을 찔러줬다. 다른 데 가서 사업하라는 조건으로. 40대 중반 그는 미국에서 가장 많은 직원을 고용하는 기업가로 떠올랐다. 골드러시 때는 중남미 항로를 개발, 연간 100만달러를 벌어들였다. 선박왕 밴더빌트는 68세 때 대결단을 내렸다. 배를 팔고 철도주식을 사들인 것. 10년 만에 뉴욕 주변 철도는 그의 소유로 변했다. 독점을 위해 주가를 조작하고 공무원을 매수해 경쟁회사를 쓰러뜨렸다. 사람들은 그를 ‘도둑 귀족’이라고 경멸했다. 생전의 기부행위도 없었다. 후손들이 그의 이름으로 기부한 105만달러가 전부다. 1973년 그의 후손 120명이 한자리에 모였을 때 백만장자는 단 한명도 없었다. 재산은 4대 만에 사라졌어도 그의 이름은 영원하다. 100만달러를 기부받은 후 센트럴대학에서 이름을 바꾼 밴더빌트대학이 존속하는 한. 입력시간 : 2006/05/26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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