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토요문화산책] 할머니와 한복

손숙 <연극인>

[토요문화산책] 할머니와 한복 손숙 손숙 할머니는 음식 솜씨뿐 아니라 바느질 솜씨도 뛰어나셨다. 늘 할아버지의 바지저고리는 물론 여름철 모시 두루마기도 날아갈 듯한 솜씨로 손질하고 다듬어 온 마을 사람들을 경탄하게 하셨다. 설이나 추석이면 언니와 필자는 할머니 덕분에 명절마다 고운 한복을 입을 수 있어 동네 친구들의 부러움을 사곤 했다. 여섯살 때던가 대구 명문 여중에 입학한 언니의 입학식에 참석하시는 어머니를 따라 생전 처음으로 기차를 타게 됐다. 할머니는 난생처음 먼 외출을 하는 어린 손녀를 위해 밤새 고운 한복을 지어주셨다. 꽃분홍 치마에 자주색 고름을 단 진초록색 모본단 저고리. 나는 아직도 그 황홀한 색깔의 한복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누비 버선에 수를 놓고 꽃주머니까지 찬 앙증맞은 어린 소녀의 자태는 입학식에 참석한 모든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고 나는 단번에 그날의 스타가 돼버렸다. 밤새워 바느질하시는 할머니 옆에 붙어 앉아 고운 천들이 뿜어내는 색깔에 넋을 놓고 있는 손녀를 위해 할머니는 예쁜 상자에 옷을 만들고 남은 비단 천 쪼가리를 모아주셨고 그 상자는 오랫동안 내 재산목록 1호가 됐었다. 그러나 그 행복했던 시절은 지나갔고 필자가 공부를 하기 위해 서울로 올라오면서 오랫동안 한복을 입을 기회조차 없어졌다. 하지만 늘 어느 장소에서든 고운 한복만 보면 가슴이 두근거리고 돌아가신 할머니 생각이 나곤 했다. 결혼을 하고 나서 때때로 결혼식이라든가 행사에 한복을 입곤 했지만 어쩐지 완벽하지 못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한복은 정성이 필요한 옷이라고 생각한다. 요즘 생활 한복도 나오고 또 국적불명의 옷을 입는 사람도 가끔 만나지만 우리 옷의 아름다움이나 우아한 품격과는 너무도 거리가 있어 늘 불만이었다. 일상복으로 늘 입을 수는 없지만 제대로 된 한복을 입을 수 있도록 배울 수 있는 곳이 많았으면 좋겠다. 며칠 전 우리나라에 와 있는 각국 대사 부인들을 모시고 한복 쇼를 하는 장소에 참석한 적이 있다. 1부는 각국의 민족의상, 2부는 한복을 입는 행사였는데 이 쇼를 통해 한복은 단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가장 우아하고 가장 품위 있는 옷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가끔 각국 정상들이 모여서 회의를 할 때 회의를 개최하는 나라의 민속의상을 입고 사진 찍는 모습을 보고 언젠가 우리나라에서 그런 회의가 열리면 우리는 그들에게 어떤 옷을 입혀야 하나 혼자 생각해 보곤 한다. 연말 모임이 많아질 텐데 올해는 그 모임에서 한복을 제대로 입은 분을 많이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리고 제대로 된 한복을 차려입은 대통령 내외분의 모습도 볼 수 있으면 좋겠다. 입력시간 : 2004-11-05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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