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정책

[한국의 베이비부머 황금연못을 찾아나서다] (1부-2) 보너스 기회 즐기는 '핫 에이지'

"나이는 숫자일 뿐… 왕성한 취미생활" 액티브 시니어가 뜬다



"스스로 늙었다고 생각하면 늙은것"
젊은이 못잖은 활동력 과시하며
격렬한 운동·산행·음악 등 도전
고령화 사회 새 롤모델로 주목
이른 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6월 초 서울 도봉산에 친숙한 얼굴이 나타났다. 산악인 엄홍길 대장이다. 그 뒤를 머리칼이 희끗희끗한 중장년층 수십명이 열심히 따르고 있었다. 건축설계사무소를 운영하는 정기훈(57)씨는 "평소 산에 관심이 많아 자주 찾는 편인데 엄 대장과도 산행을 하게 돼 큰 영광"이라며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이들은 '여유 50+'라는 한 생명보험사 멤버십클럽 회원들로 이 보험사 홍보대사인 엄 대장과 주말산행에 나선 것이다. 지난 2010년 6월 클럽이 개설된 후 전국에 걸쳐 모두 27만명이 회원으로 가입했다. 정씨는 "회원들과도 취미를 공유할 수 있어 산행이 두 배 더 즐거워졌다"고 말했다. 일반적인 정년퇴직 나이가 55세라고 하면 30년을 넘게 살아야 한다. 과거에는 수동적으로 살며 늙어갔지만 이제는 자신과 가족ㆍ사회를 위해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는 '액티브 시니어(Active Senior)'가 고령화 시대의 새로운 롤모델로 자리잡고 있다. ◇부쩍 늘어난 '액티브 시니어'=젊은이 못지않은 '활동력'을 과시하는 실버세대. 이들은 노인ㆍ은퇴자ㆍ실버인구ㆍ실버마켓 같은 말을 체질적으로 거부한다. 그래서 이들에게는 '핫 에이지(Hot Age)'라는 별칭이 붙었다. 하버드대 성인발달연구소의 윌리엄 새들러 박사가 처음 명명한 이 단어에는 은퇴 이후 30년의 삶을 '활동적이고 자부심을 가지며 안정적으로 사는 세대'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피터 래슬릿 영국 트리니티대 교수 역시 이 같은 노년기를 '제3기 인생(The Third Age)'이라고 지칭했다. 격렬한 레저나 스포츠, 다양한 문화예술 활동에 거침없이 참여하는 액티브 시니어들은 육체적 나이는 물론 정신적 한계도 쉽사리 뛰어넘는다. 그들에게 나이란 그저 나이에 불과하다. 철도공무원으로 정년 퇴임한 지 10년이 훌쩍 넘은 여성태(72ㆍ충북 제천시)씨. 그는 요즘도 일주일이 멀다 하고 백두대간을 오르내린다. 현직에 있을 때부터 꾸준히 운동을 해온 덕분에 산행에 함께 나서는 젊은이들이 혀를 내두를 정도로 날렵한 몸매와 근력을 자랑한다. 요즘은 여씨를 모범 삼아 그의 동년배, 전직 동료들도 속속 등산동호회에 참여하고 있다. "사나흘에 한번은 가벼운 등산을 하고 한달에 한번은 지역 산악회와 함께 백두대간을 오른다"는 여씨는 "여유롭고 건강하게 노년을 즐기려면 등산만한 것을 찾기 힘들다"고 말한다. 전혜정 연세대 아동가족학과 교수는 "정신과 신체가 건강한 노년층을 중심으로 이전 세대와는 확실히 다른 뉴실버 문화가 창출되고 있다"며 "과거의 노년층이 수동적으로 자신의 삶을 맡기는 형태였다면 지금은 적극적이고 활동적이며 새로운 길을 스스로 개척하면서 젊은 시절의 정체성을 고스란히 유지하면서 살아간다"고 설명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액티브 시니어에게는 '스스로 늙었다고 생각할 때만 늙은 것'이라는 적극적인 사고가 공통되게 발견된다. 액티브 시니어들의 등장으로 직장생활을 핑계로 미뤄놓았거나 제약을 받던 취미생활이나 여가활동을 오히려 은퇴 이후 더 적극적으로 즐기고 도전하는 노인들이 부쩍 늘어나고 있다. 10여년 전 관우회(관세청 퇴직자들의 모임으로 현재의 관세무역개발원)에서 정년 퇴직한 김광석(67)씨와 부인 박명자(62)씨 부부는 요즘 아코디언 배우는 재미에 푹 빠져 있다. 안산문화원이 마련한 수업에서 아코디언을 배워 솜씨를 뽐낼 정도가 됐다. 박씨는 "문화원에 아코디언 강좌가 개설됐다는 소식을 듣고 왔는데 처음에는 남편이 배우지 않겠다면서 손사래를 쳤다"며 "지금은 누구보다 아코디언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이들 부부는 강습이 없는 날이면 집에서 아코디언을 연주하며 서로 틀린 부분을 고쳐주면서 지낸다. 남편 김씨도 "악기라는 게 음악적으로 재능이 있는 사람만 하는 줄 알았는데 와서 보니 비슷한 또래의 남자들도 많아 요즘은 적극적으로 즐긴다"고 했다. 어드바이저인사이트사의 미치 앤서니 사장은 '은퇴혁명'이라는 책에서 "인생 후반부에 대한 가장 큰 공포와 불안감은 사회보장제도의 소멸이나 돈이 없는 것이 아니라 삶의 목적을 상실하거나 의미 있는 일을 갖지 못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국사회에 이제 막 등장한 액티브 시니어들은 노후의 여유를 맥없이 소비하지 않고 새롭게 도전하는 '보너스 기회'로 만들어 적극적으로 즐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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