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KAL기 참사원인 뭔가/서울대 김승조 교수(인터뷰)

◎“괌공항 용역관제등 허점”/블랙박스 해독과정 미 입김작용 우려/유능한 조종사 양성등 국가지원 필요2백25명의 귀중한 목숨을 앗아간 대한항공 801편 추락참사는 사고 발생 1주일이 다가오고 있는데도 정확한 사고 원인은 나오지 않고 책임을 떠안지 않으려는 한·미간의 신경전만 가열되고 있다. 서울대 김승조교수(항공우주공학)는 사고원인 조사와 관련, 『미리 결론을 정해놓고 원인 조사에 나서는 것은 한·미 어느 쪽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조사 과정에 단 1%의 선입견도 개입돼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김교수를 만나 이번 사고의 원인과 대책, 우리 항공산업의 발전방향을 들어봤다. ­사고 원인을 둘러싸고 말들이 무성합니다. 미국측은 공공연히 조종사의 과실 쪽으로 몰아가고 있습니다. 한·미간의 시각차가 이토록 큰 까닭은 무엇입니까. ▲사고원인 규명에 따라 배상 주체와 그 책임 규모가 판이하게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괌 공항의 관제시스템에 문제가 있었던 것으로 드러나면 탑승객 전원은 항공사로부터 받는 배상에다 공항 소유국인 미국으로부터 배상을 받을 수 있습니다. 반면 괌 공항측에 전혀 문제가 없다면 항공사만 배상 책임을 지게 됩니다. 이 경우 조종사 과실 여부에 따라 배상의 범위가 결정되지요. 또한 항공산업의 종주국이랄 수 있는 미국과 대한항공 모두 위신 추락과 이미지 손상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겁니다. ­사고조사를 총괄하는 미국NTSB(연방교통안전위원회)측의 1차 발표결과 원인이 인재 쪽으로 기울고 있는 분위기입니다. ▲블랙박스 해독이 끝나야 명확하고 신뢰성있는 원인이 나올 것입니다. 다만 지금까지의 정황으로 볼 때 괌공항 관제장치의 문제, 대한항공 조종사의 과실, 기체결함, 악천후 등을 검토 대상에 올릴 수 있습니다. 이 중에서 가장 유력한 것은 관제장치의 이상과 조종사의 과실입니다. 사고 항공기의 기종으로 볼 때 기체결함의 가능성은 희박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악천후 속에서 괌공항의 착륙유도장치가 고장나는 바람에 관제사나 조종사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 복합적 사고일 가능성이 가장 유력하다고 판단합니다. ­그렇다면 관제사나 조종사중에서 어느 쪽에 더 문제가 있었을까요.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괌 공항의 관제시스템에 문제가 있었던 것만은 사실입니다. 괌 공항은 레이건행정부 당시 관제사들의 파업으로 용역팀이 생겨났습니다. 전문 기술인력을 용역에 맡기는 등 너무 비용문제에만 집착했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이는 전 세계 항공업계의 현실입니다. 괌 공항의 착륙유도장치가 고장나 있었다는 사실은 간과할 수 없는 부분입니다. ­블랙박스 해독작업이 본격적으로 이뤄지고 있습니다. 우리측 조사반도 해독작업에 참여하고 있는데요. ▲한·미 양측이 사고의 원인을 놓고 신경전을 벌이는 상황에서 블랙박스는 객관적이고도 유일한 증거죠. 블랙박스는 음성기록정보(CVR)와 비행기록정보(FDR)로 구성돼 있습니다. 기술적으로는 이틀이면 판독이 가능하지만 기록을 해석하는 데는 상당한 시일이 걸립니다. 옛 소련에 의해 격추된 대한항공 여객기가 어떤 이유로 항로를 벗어났는 지에 대해 아직까지도 명확한 결론이 나지 않고 있는 것도 객관적으로 확인된 수치를 놓고 관계자들 사이에 해석이 엇갈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번에도 블랙박스 기록의 해석 과정에서 미국의 힘이 강하게 작용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섭니다. ­사고가 난 항공기가 비교적 낡았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항공기의 적정 수명은 얼마인지요. ▲항공기의 수명을 일률적으로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항공기는 몇 년을 사용했느냐보다 얼마나 철저히 정비했느냐가 더 중요하니까요. 우리나라 항공기의 수명은 세계적으로 볼 때 결코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미국은 비행기 수명이 평균 20년인데 정기 점검을 통해 부품을 수시로 바꿉니다. ­국내 공항 및 항공산업의 문제점을 지적한다면. ▲국내 지방항공의 경우 대부분 계기착륙유도장치가 설치돼 있지 않습니다. 활주로 길이 등에도 문제가 많습니다. 공항의 입지가 적절치 못해 안개 등으로 인한 결항도 잦습니다. 사고의 위험을 늘 안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하루빨리 개선해야 합니다. 비행기 운항은 90% 이상이 계기비행에 의존하기 때문에 더욱 그렇습니다. ­항공기 사고를 막을 수 있는 대책은 무엇입니까. ▲우선 유능한 조종사들을 충분히 양성해야 합니다. 국가의 대폭적 지원이 필요한 대목입니다. 자질있는 관제사의 양성도 필요합니다. 미국의 조종사들이 우리나라를 비롯한 아시아 지역을 운항할 때는 암흑지대에 들어온 것과 같다는 하소연을 합니다. 조종사들이 사용하는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관제사가 있기 때문이지요. ­정부의 항공정책과 항공사들의 경영 자세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사고 후 대처하는 능력도 부족한데요. ▲우리도 자체적인 항공규정을 만들어야 합니다. 지금 사용하고 있는 대부분의 항공규정은 미국 것을 그대로 원용한 것입니다. 사고가 날 때마다 미국이나 항공 선진국의 입김에 밀리는 까닭도 여기에 있습니다. 항공사들은 규정을 정확히 지키려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단 한가지라도 규정을 지키지 않으면 기업이 망하게 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정부는 항공기에 대한 각종 검사 규정을 보다 실질적인 방향으로 강화해야 합니다. 또 사고가 났을 때는 확실히 대처할 수 있는 위기관리 능력을 갖춰야 합니다. 인천국제공항이 완공되는 2000년대 초에는 우리도 세계 5위권의 항공산업 국가가 됩니다. 지금이야말로 정부와 항공사들이 능력과 힘을 기를 때입니다.<성종수·이은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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