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벙어리 냉가슴/산업2부 박동석 기자(기자의 눈)

올들어 한보를 필두로 삼미, 진로, 대농, 기아, 쌍방울 등 국내 굴지의 대기업들이 줄줄이 쓰러지며 중소기업들이 연쇄부도사태를 맞고 있다.공장문을 닫는 중소기업이 속출하고 심지어 경영난을 비관해 스스로 목숨을 버리는 사장들도 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벤처기업들은 이러한 와중에서도 호황을 누리고 있는 줄만 알고 있다. 사실 거래관계가 거미줄처럼 연결되어 있는 상행위에서 벤처기업이라고 예외일 수 없는 일이다. 국내 벤처기업들은 요즘들어 자금난으로 남모르는 시련을 겪고 있다. 인트라넷전문 벤처기업인 J사는 기아그룹에 소프트웨어를 납품하고 받은 어음 2장을 결제하지 못해 2억원을 그냥 날려버렸다. 금액은 얼마안되지만 연간 매출액이 20억원인 소프트웨어개발업체에 이 어음 2장은 큰 금액이었다. 세계적 전략시뮬레이션기술을 갖고 있는 T사 역시 1억원이 넘는 몇장의 어음만기를 그냥 지나쳐야 했다. 유럽과 일본 등지에 게임소프트웨어를 수출해 온 S사도 납품대금으로 받은 5천만원짜리 어음을 그냥 휴지통에 버려야 했다. 3사의 경우는 단적인 예에 불과하다. 한창 잘 나간다고 소문났던 벤처기업들마저 일반의 예상과는 달리 받을 어음의 부도로 고통스러워하고 있다. 그렇다고 어디 하소연할 곳도 없다. 벤처기업사장들의 고민은 여기에 있다. 벙어리 냉가슴이다. 일반 중소기업들의 경영난은 새삼스러운 얘기가 아니지만 벤처기업은 입장이 다르다. 모처럼 불붙기 시작한 국내 벤처산업에 악영향을 끼칠 것을 우려해 누구도 회사사정을 입밖에 내놓지 못하고 있다. 회사가 간접적인 악영향을 받을 수도 있어 속내만 탄다. 최근 짧은 기간에 조성된 벤처거품을 이용하려는 벤처기업들은 정리되어야 마땅하다. 문제의 심각성은 복잡하게 꼬이기만 하는 경제구조 때문에 세계적 기술을 갖춘 건실한 벤처기업마저 제대로 달리지 못하고 있다는 데 있다. 한 벤처기업 사장은 『정부가 이 경제난국을 조속히 해결하지 못하는 한 벤처기업육성은 한낱 구두선에 그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강경식 경제팀에 강한 불만을 나타냈다.

관련기사



박동석 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