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당 대출부터 지점장과 부지점장의 동시 구속, 현지직원 자살사건까지…. 이른바 '국민은행 도쿄지점 파문'은 주택은행과 국민은행, 장기신용은행 등 '합병 국민은행'이 지난 10년간 축적한 왜곡된 은행 문화의 상징판이다. 개인 횡령으로 봐야 한다는 시각도 있지만 KB에 만연한 내부통제 실패에 따른 예고된 사태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사건은 지난해 전 도쿄지점장인 이모씨가 본부장 승진 대상에 오르면서부터 시작됐다. 이씨는 당시 그룹 회장이었던 어윤대 전 회장을 비롯한 고위층들의 추천을 받아 승진 대상에 올랐다. 이씨는 어 전 회장이 국제통화기금(IMF) 연차 총회 방문 차 도쿄를 방문했을 때 의전을 담당했고 이때 어 전 회장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고 전해진다.
그런데 이씨가 제출한 공적조서에서 수상한 점이 발견됐다. 특히 도쿄지점장 재임 기간 동안 전년 대비 40% 이상 급증한 대출 자산이 문제가 됐다. 한 시중은행 도쿄지점 관계자는 "일본은 저성장이 만연된 곳인데 현지 은행도 아닌 해외 은행 지점에서 대출 자산을 그 정도로 늘린다는 것은 상당히 이례적인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씨가 이례적으로 무리한 자산 확충에 나선 것은 은행이 내건 인센티브 카드가 기폭제가 된 것으로 보인다. 회장 재임 시절 은행에 지대한 관심을 보였던 어 전 회장은 국민은행의 약점으로 꼽히던 해외 영업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전력을 다했다. 어 전 회장이 꺼낸 카드는 일종의 포상제도로 해외 지점이 일정 성과를 달성하면 지점이 거둔 이익의 20%를 해외 지점에 주겠다는 것이었다. 이 조건을 유일하게 충족시켰던 것이 도쿄지점이었다.
어찌 됐든 급격한 자산 증가에 문제의식을 가진 은행 본점은 자체 감사를 실시했고 도쿄지점에서 일본 현지기업에 다른 사람 명의로 한도를 초과한 부당 대출을 해준 사실이 드러났다. 은행은 이씨를 승진 대상에서 제외하고 올해 1월 대기발령 조치를 내렸다.
개인 비리로 끝나가던 사건은 3개월 후 또 다른 문제로 확산되기 시작했다. 정기검사를 진행하던 일본 금융청이 도쿄지점의 야쿠자 자금 관리 혐의를 포착한 것이다. 일본 금융청은 2011년 야쿠자와 관련된 인물로 의심되는 한 일본 여성이 우체국 계좌에서 도쿄지점에 4억5,000만엔(한화 약 50억원)을 예금했다고 밝혔다.
일본 금융청까지 개입되자 국민은행은 7월 도쿄지점에 대한 재검사를 실시했다. 검사 결과 도쿄지점이 2008년부터 20여개 일본 현지기업에 2,000억원가량의 부당 대출을 해준 것이 드러났다. 국민은행은 즉각 이씨와 도쿄지점 직원들을 검찰에 배임혐의로 고발했다.
그 후 9월부터 금감원 특별검사가 시작되고 이때부터 비자금 조성혐의가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전체 비자금 중 20억원 정도가 국내에 들어왔고 일부는 한 백화점 상품권 판매 업체를 통해 세탁된 뒤 5,000여만원이 조성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달 16일에는 한국과 일본 금융당국이 국민은행 도쿄지점 비자금 의혹 규명을 위해 공동검사에 나선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그리고 이날 도쿄지점 현지직원이 자살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했다. 이 직원은 2007년 입사해 7년째 도쿄지점에서 근무했다.
금융당국의 한 관계자는 "자살한 직원은 우리나라에 있다가 일본 현지에서 채용된 사람으로 여신을 담당한 것으로 파악됐다"며 "더 이상 구체적인 것은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번 현지직원 자살사건으로 도쿄에 진출한 국내 은행들의 영업력이 크게 위축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한 시중은행 도쿄지점장은 "일본은 사건사고에 대해 발본색원한다는 원칙을 갖고 있는 곳이어서 자살사건을 계기로 더욱 낱낱이 조사를 실시할 것"이라며 "거기서 구조적 문제가 발견되면 한국계 은행에 대한 견제는 더욱 강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무엇보다 일각의 관측대로 전임 경영진의 비자금 의혹이 사실일 경우 이번 사태의 파장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가 될 것이라는 게 금융가의 관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