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볼커 룰

2006년 봄 골드만삭스 경영진에 내부 보고서가 올라왔다. 모기지 상품(MBS)의 위험성을 경고하면서 비중 축소를 권고한 게 골자다.미국의 부동산 경기가 절정으로 치닫던 때라 보고서는 곧바로 휴지통에 처박히고 만다. 그런데 몇 달 뒤 같은 요지의 보고서가 또 나왔다. 그제서야 위험을 직감한 경영진은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지시한다. 반년에 걸쳐 보유 위험노출(익스포즈)현황을 전수 조사한 TF의 결론은 MBS 자산의 비중 축소 내지 매각. 2008년 9월 월가 발 금융위기가 터기지 1년 전의 일이다.


△문제의 자산 처분 결론에 이르기까지 오랜 시일이 소요된 연유는 MBS같은 구조화 상품의 설계가 복잡하기 이를 데 없기 때문. 신용보강을 위해 이런 저런 채권을 한데 버무려 완전히 새로운 상품으로 탈바꿈한 탓에 원조자산을 분리하고 역추적하는 작업이 극히 어려웠던 것. 첨단 금융공학으로 무장한 월가의 천재들이 쓰레기나 다름없는 서브 프라임 모기지까지 신용위험 제로로 포장하는 요술을 부렸던 시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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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시장에서 고위험·고수익 원칙은 게임의 룰을 지배한다. 프롭 트레이딩(proprietary trading)으로 부르는 자기자본거래는 위험감수 투자전략의 결정판이다. 고객 돈으로 투자해봐야 고작 몇 푼의 수수료만 챙길 뿐이지만 자기자본으로 고위험 상품에 투자하면 사정은 달라진다. 대박 아니면 쪽박이다. 차입으로 덩치를 키우면 레버리지 효과도 얻는다. 월가의 인적·물적 자원이 여기에 집중될 수밖에 없다. 연말이면 월가가 보너스 잔치로 흥청망청한 연유도 여기에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는 리스크 제로 상품을 만들 수 있고 그것으로 일확천금을 거머쥐겠다는 월가의 오만과 탐욕이 빚어낸 참극이다.

△미국 금융당국이 월가의 저항을 뚫고 프롭 트레이딩 금지를 결국 승인했다.강경 매파성향의 폴 볼커 전 연준(Fed)의장의 구상이라 해서 ''로도 불리는 이 제도는 1930년대 대공황 이후 가장 강력한 금융 규제다. 대공항 때 상업은행과 투자은행을 분리한 글래스-스티걸법의 21세기 버즌이기도 하다. 금융시장이 양들이 뛰어노는 평화로운 초원이 아니라 약육강식의 논리가 지배하는 정글이라지만 이제는 정글에도 새로운 게임의 질서가 잡혀가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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