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경부 崔性範차장한해에 한두번 정도는 꼭 꾸는 별로 기분좋지 않은 꿈이 두가지 있다.
첫번째는 대학입시에 관한 것이다. 그 꿈의 종류는 여러가지로 입시날짜는 다가오는데 수학과목중 미적분부분 공부는 전혀 하지 않았다든지 필기시험엔 합격했는데 깜박잊고 면접시험을 빼 먹었다든지 하는 다소 황당한 내용이 대부분이다. 물론 이 꿈에 가위 눌리다 깨어난 뒤 원하는 대학에 무사히 합격해 졸업까지 했다는 현실을 파악(?)하고는 안도하곤 했던 기억이 있다.
또 하나의 꿈은 전쟁에 관한 것이다. 나이가 들면서 그 빈도가 뜸해졌지만 어렸을 적에 자주 꾸었던 꿈이다. 어느날 전쟁이 터지고 한강다리가 끊어져 가족들 품으로 어떻게 돌아가야 할지를 놓고 허둥댄다든지, 가족들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에 대해 걱정을 하면서 가위눌리던 기억이 있다.
이 두가지 꿈은 막연한 개꿈이라고 생각하고 싶지는 않다. 한국에서 태어나 교육받은 대다수의 사람들이 갖는 강박관념이 아닐까. 누가나 살떨리는 입시경쟁을 겪었는데도 유별나게 나이들어서까지 꿈에 나타난다는 점은 성격상의 문제로 치부할 수 있다. 하지만 전쟁을 겪은 것도 아니고 이산가족도 월남가족도 아닌 처지에서 전쟁공포가 꿈에도 등장한다는 사실은 그만큼 강박관념이 머릿속 너무 깊숙이 자리잡은 탓이 아닐까. 길거리에는 각종 반공(反共)구호가 난무하고 반공이 사실상의 국시였던 상황에서 6.25당시 한강철교가 폭파돼 수많은 사람들이 고초를 겪어야 했다는 얘기를 끊임없이 들어온 데다 북한이 호시탐탐 적화의 기회를 노린다는 교육을 줄곳 받아오면서 생겨난 강박관념임에 틀림이 없다.
최근에 두번째 꿈의 소멸시효가 연장될 수 있는 일이 생겼다. 이른바 서해교전이다. 세대에 따라선 걸프전쟁당시 CNN을 통해 중계되는 「사막의 폭풍(DESERT STORM)」작전을 관람하는 정도로 별다른 감정없이 받아들일 수도 있고, 「멸공」만이 살길이라는 구호를 새삼 되새기는 세대도 있을 것이다. 보통의 30~40대의 기성세대들은 논리적으론 단순한 충돌 정도로 여기면서도 전쟁에 관한 꿈을 자신도 모르게 떠올리는 경험을 했을지도 모른다.
서해교전은 예전같으면 정부가 먼저 위기론을 부추겨 남북간의 심각한 대치상황이 야기될 수도 있는 사안이었지만 크게 달라진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정부가 여론악화의 부담을 그대로 짊어지면서도 냉전적 사고를 끝까지 경계했다는 점이다. 지금 자라나는 세대는 기성세대와는 달리 전쟁공포의 악몽에서 보다 자유로울 수 있다는 점에서 지극히 다행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앞으론 「서해교전」이 아니라 「꽃게분쟁」이라는 명칭을 쓰는 게 어떨까. 어린 세대가 행여나 악몽을 꾸지 않는데도 도움이 되고 문제의 본질을 제대로 이해하는 데에도 나을 수 있으니까. SBCHOI@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