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국제일반

구로다노믹스가 낳은 '뉴 리치' 장기 불황 일본 소비지형 바꾸다

아베노믹스 선봉장 구로다 총재 2년 간 대규모 금융완화책 시행

증시 호황으로 '벼락부자' 급증… 백화점 고급매장 대대적 확충

"일부 신흥부자에게만 혜택 집중 서민 가계부담은 키워" 비판도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 총재가 시중에 푸는 통화량을 2배로 늘려 2년 내 물가상승률 목표 2%를 달성하겠다고 약속한 지 4일로 만 2년을 맞는다. 아베 신조 총리가 지난 2013년 3월 '아베노믹스'의 선봉대장으로 지명한 구로다 총재는 그해 4월4일 취임 이후 처음 주재한 금융정책결정회의에서 장기 디플레이션 탈출을 위한 '양적·질적 금융완화'를 선포하고 대대적인 돈 풀기에 나섰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난 지금 일본의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은 지난해 소비세율 인상분을 제외하면 아직 '제로' 수준에 머물러 있다. 아소 다로 재무상은 3일 "유가 하락 등의 이유로 (2년 내) 물가목표 2%를 달성하지 못한 것은 분명하다"고 인정했다. 아직 경기 선순환이 실현되지 못하면서 가계소비도 여전히 위축된 상태다. 하지만 지난 2년간의 대규모 금융완화는 일본 증시를 근래 보기 드문 호황으로 이끌며 투자와 창업으로 부를 축적한 새로운 소비계층을 낳고 있다. 구로다 총재의 양적·질적 완화 정책, 즉 '구로다노믹스'가 낳은 신부유층인 이른바 '뉴리치(new rich)'의 대두와 여전히 체감불황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서민층의 팍팍해진 살림살이 속에 일본의 소비지형이 달라지고 있다.

3일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일본 대형 백화점들은 뉴리치를 겨냥해 앞다퉈 신규 고급형 매장을 열었거나 열 예정이다. 이날 미쓰코시이세탄홀딩스가 도쿄 롯폰기의 복합쇼핑몰 '미드타운' 내에 고가 의류 및 잡화 특화 소형 점포인 '이세탄 살로네' 1호점을 개점한 것을 비롯해 앞으로 3년 동안 전국 주요 도시에 10개 매장을 추가로 낼 예정이다. 도큐백화점도 내년 도쿄 번화가인 긴자에 유사한 형태의 점포를 낼 예정이다. 마쓰자카야도 올 봄부터 일부 점포를 고급화하기 위한 대대적인 리뉴얼에 돌입한다.


소비 트렌드에 누구보다 민감한 백화점 업계가 주목하는 것은 아베노믹스가 낳은 신부유층, 즉 40대를 중심으로 억대의 금융자산을 쥐게 된 뉴리치다. 노무라종합연구소에 따르면 일본 내 순금융 자산이 1억엔(약 9억1,000만원)을 웃도는 부유층은 아베 정권이 출범한 2013년 100만가구를 넘어선 데 이어 지난 2년 동안 약 20만가구가 더 늘었다. 이들은 대대로 자산을 물려받은 전통부자들과 달리 창업이나 투자로 새롭게 부를 일군 신흥부자들을 뜻한다. 여기에는 고소득 직종의 맞벌이 부부도 포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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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의 부를 뒷받침하는 것은 아베 정권과 일본은행이다. 니혼게이자이에 따르면 일본은행의 양적완화 정책에 따른 상장투자신탁(ETF) 매입과 지난해 10월부터 시동이 걸린 공적연금(GPIF)의 주식투자 확대까지 맞물려 2014회계연도(2014년 4월~2015년 3월)에 일본 증시로 유입된 공적자금은 5조엔을 웃돌며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대기업 위주의 임금 인상도 뉴리치 확산에 일조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아베 정권 출범 후, 특히 구로다 총재의 금융완화가 진행된 지난 2년간 50% 이상 급등한 증시 활황을 타고 금융자산을 대거 불린 이들 신흥부자는 여전히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는 일본의 서민층이나 중산층과 달리 고급품에 대한 왕성한 소비의욕을 과시하며 새로운 소비주도층으로 부상하고 있다. 최근 백화점 내 보석매장의 고가품 매출이 2013년 대비 30~40%까지 늘어난 배경에는 이들 뉴리치의 대두가 자리 잡고 있다.

다만 3년째로 접어드는 구로다노믹스의 혜택은 일부 신흥부자들에게만 집중되고 있다는 비난도 적지 않다. 일본은행의 돈 풀기 정책은 부유층의 자산 증식에는 도움이 됐지만 엔저가 초래한 생활물가 상승으로 서민층의 가계부담을 오히려 키웠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양적완화 혜택이 대도시와 대기업·부유층으로 쏠리면서 지방과 중소기업·서민층과의 격차는 갈수록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뉴리치의 고급 소비지향과 달리 생활용품과 식품 등에서는 긴축소비가 이어지면서 양극화가 뚜렷해지고 있다고 니혼게이자이는 지적했다.


신경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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