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 문화산책] '명상산업과 自己상품'
서동진
서동진
‘내 속에 내가 너무 많은’ 다중인격장애는 아마 21세기를 대표하는 마음의 병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물론 알코올의 소비가 줄어들 생각을 하지 않고 항우울증 약이 날개 돋친듯이 팔리는 대다수 서구 사회에서의 일이기는 하다. 그 깊은 우울과 자기를 향한 분노가 무엇 때문인지 속 시원히 설명하고 처방하려는 것 자체가 이미 하나의 산업을 이루고 있다.
제약산업이 항우울제로 벌어들이는 돈이 얼마나 많은가 하는 것은 비밀이 아니다. 그러나 처방과 치료의 약속은 의학에서만 나오는 것은 아니다. 이른바 좌절감ㆍ자기모멸감ㆍ무기력감 등을 치료하고 ‘자아혁명’을 선물하며 성공과 행복을 안겨주겠다는 자기계발 산업도 성장과 발전을 거듭했다. 그러나 그것은 더이상 개인주의, 혹은 나르시시즘에 물든 서구 자본주의의 사정만은 아니다. 또 나와는 좀 다른 별난 사람들의 별난 생활방식도 아니다.
자기계발계의 원조, 맥스웰 몰츠의 말처럼 ‘정신의 성형수술’을 받으려는 사람들이 꼬리를 물고 있고 이미 한국 사회에서도 평범한 일상이 됐다. 자기계발이라는 문화상품을 가장 잘 팔아치우는 곳은 뭐니뭐니 해도 한국에서 ‘명상산업’이라 부르는 것이리라.
‘웰빙’이라는 트렌드가 소비문화의 황금률로 자리잡으면서 잘 먹고 잘살겠다는 사람들을 겨냥한 상품들이 넘쳐난다. 잘살아보려는 의지가 극히 평범한 본능이자 인간 정신의 프로그램이라면 모를까 그것이 하필 요즘에 갑자기 등장한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으리라.
그것은 아마 자기가 누구인지를 설명해주던 구시대의 모든 보증들이 사라졌기 때문일 것이다. 전처럼 신분이나 계급, 혹은 가족과 직장이 자신의 정체성을 설명해주고 보증해주던 시대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사회적 구속으로부터 정체성이 떼어지고 그것이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것이 됐다고 역설한다. 그렇지만 그 자유로운 선택이 진짜 나를 찾기 위한 방황을 낳고 그 방황이 시장에서 상품-정체성을 사들이는 행위로 끝난다면 이는 즐거운 일은 아니다. ‘자기를 찾아 가는’ 패키지 관광 상품ㆍ아로마요법ㆍ명상 프로그램이 나날이 번창할 것은 분명하다. 그렇다고 비분강개할 일만은 아니다. 그것은 우리 시대에 자기라는 정체성을 무엇이 결정할지를 두고 벌어지는 갈등의 한 편린을 보여줄 뿐이기 때문이다.
입력시간 : 2004-06-11 16: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