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동십자각] 위기의 김석동

김석동 금융위원장은 현 정부에 지분을 갖고 있지 않다. 이것은 그의 가장 큰 단점이다. 사무관 시절부터 '준비된 장관' 소리를 듣고 기수를 뛰어 넘으면서 차관까지 올랐지만 정작 현 정부 들어 매번 물을 먹었던 것은 바로 정치적 끈이 없었던 탓이다. 오죽하면 현 정부의 장관급 인사가 "SD(김 위원장의 애칭)를 인사 때마다 (청와대에)올려도 누군가가 브레이크를 건다"고 했을까. 이 때문일까. 그는 장관직에 오르자마자 '속도전'을 키워드로 내세웠다. 정치적 힘이 없는 상황에서 입지를 굳힐 길은 하루빨리 눈에 보이는 결과물을 내놓는 길밖에 없다는 점을 깨달았던 것이다. 실제로 취임 후 그는 삼화저축은행의 문을 닫으면서 속전속결을 택했고 우리금융 민영화 역시 시간을 끌지 않겠다고 했다. 정치력의 부재는 특유의 '관치 카리스마'로 채우려 했다. 하지만 현실은 욕심을 따라주지 않는 듯하다. 당장 복종의 대상으로 삼은 시장이 배신하고 있다. 환란 후 밤을 새우면서 힘들게 쌓아 올렸던 '금융의 기본'이 갈기갈기 찢기고 있다. 신한지주의 지배구조 상처가 아물기도 전에 대형 전산사고가 연이어 터졌다. 이를 수습하는 은행의 모습은 한심하다 못해 안쓰럽다. 기업들은 은행과 얘기도 없이 법정관리에 들어간다. 꼬리 자르기도 모자라 법원을 찾기 직전 어음을 발행해 투자자들의 뒤통수를 쳤다. 저축은행에서는 '그들만의 특권층'이 야밤에 돈을 빼갔다. 그들이 이불 속에서 환호성 칠 때 추운 겨울 시장 좌판에서 손을 녹여가면서 모은 돈을 떼인 아주머니들의 속은 썩어 문드러져 가고 있다. 이것이 바로 수 백조원의 혈세를 쏟아 부으면서 공들여 쌓은 ㈜대한민국 금융산업의 현주소다. '눈물의 비디오'를 만들면서도 자신의 직장이 우뚝 서기를 소망했던 전직 제일은행원들과 수많은 퇴직 금융인들이 이 모습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할까. 이쯤에서 김 위원장은 차분히 돌아 볼 필요가 있다. 시장이 진심으로 그를 따르고 있는지 너무 큰 그림만 그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말이다. 지금은 자신이 역작으로 내세워온 '금융산업 블루 프린트'와 같은 거창한 그림이 아니라 기본뼈대부터 새롭게 생각할 시점이다. 주어진 시간은 많지 않다. 대통령의 측근들은 절대 많은 기회를 주지 않을 것이다. 저축은행 한 곳만 더 문을 닫아도 진퇴를 운운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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