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19일 수유리 묘전서 몽양 여운형 선생 추모식

조국광복과 민족의 통일을 위해 일생을 비친 몽양 여운형 선생(1885년 4월 24일~1947년 7월 19일)의 64주기 추모식이 19일 오전 11시 서울 강북구 수유리 묘전에서 몽양여운형선생기념사업회 주관으로 열린다. 이날 추모식은 나종남 서울북부보훈지청장 직무대행, 함세웅 민주화운동기념 사업회 이사장을 비롯한 독립운동관련단체장과 광복회원, 기념사업회원 및 유족 등 200여명이 참석한다. 국민의례를 시작으로 전창일 기념사업회 고문의 경과보고, 이부영 기념사업회장의 식사, 각 정당대표, 박겸수 강북구청장, 함세웅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의 추모사ㆍ봉도가에 이어 여인영 대구중공업회장의 유족인사와 헌화․분향 순으로 진행된다. 선생은 경기도 양평에서 태어나 배재학당, 흥화학교 등에서 신학문을 익혔다. 1908년에는 기호학회 평의원으로 활동했고, 1910년 강릉의 초당의숙에서는 민족교육에 매진했다. 1918년 상해에서 상해고려인친목회를 조직, 총무로 활동하면서 기관지인 ‘우리들 소식’을 발행했으며, 같은 해 8월에는 신한청년당을 조직하고 총무로 활약했다. 3․1운동 직후인 1919년 4월 상해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자 외무부 차장, 임시의정원 의원 등을 역임했으며, 같은 해 11월에는 일본의 심장부인 동경을 방문해 일본 고위 관료들을 상대로 한국독립의 정당성을 역설, 일본은 물론 국제사회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1920년 고려공산당에 가입, 1922년 1월 모스크바에서 극동피압박민족대회가 열릴 때 조선민족 대표의 일원으로 참석해 조국 독립의 당위성을 역설했다. 그 해 10월에는 상해로 돌아와 독립운동의 장기적 구도아래 백범 김구 등과 함께 한국노병회(韓國勞兵會)를 조직, 군사적 투쟁을 준비하기도 하였다. 일본의 패망을 확신하고 1944년 8월 비밀리에 건국동맹을 결성해 조국광복을 준비했고, 광복 후에 건국준비위원회를 조직했으나 실패하고 극좌ㆍ극우 양측으로부터 소외당한 채 좌우합작운동을 추진하던 중 1947년 극우파의 흉탄에 맞아 서거했다. 정부에서는 선생의 공훈을 기려 2005년에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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