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는 민원처리 과정에 보아(BOA)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보아(BOA)라면 유명한 댄스가수인데 행정기관에 왠가수 보아(?)" 한 지방자치단체가 주민들을 위해 내건 정체불명의 이 `보아'를 주민들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 시를 통해 확인결과, BOA는 민원처리 전 친절히 안내하는 Before, 처리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Open, 처리 후에 책임지는 After의 각 영어 단어 첫글자를 따내 시책으로 만든 것.
이처럼 최근 행정기관을 중심으로 멀쩡한 우리말을 두고 외래어를 마구 사용하는 것이 전염병처럼 거세게 번지고 있다.
지자체마다 시정구호도 이른바 `브랜드 슬로건'으로 불리면서 경남도는 `필 경남(Feel Gyeongnam)', `영 시티(Young City) 창원', `드림베이(Dream Bay) 마산', `굿모닝(Good Morning) 진해' `BUY-김해' 등 온통 외래어 투성이다.
지자체에서 쏟아지는 시책에도 영어권 외래어가 부지기수다.
'프로젝트' `비전' `어젠다' `인프라' `파트너십'을 비롯해 `로드맵' `콘텐츠'`포커스' `펀드' `벤치마킹' `유비쿼터스' 등은 제대로 이해조차 못하고 막무가내로 사용하고 있다.
경남도는 조만간 민방위교육 대상자에게 휴대전화 문자메시지와 e-메일을 통해 교육일정을 통보하는 `크로샷(Xroshot)' 제도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크로샷' 어원은 크로스(Cross)와 보낸다는 뜻의 샷(shot)의 합성어다. 이쯤되면 대부분의 주민들은 거의 이해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른다.
도 관계자는 "달리 표현할 적당한 말도 없고 굳이 우리말로 바꿔 부르는 것도 이상해 개발된 용어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해.양산.밀양시는 지난해와 올해 잇따라 `멘토링(Mentoring)' 제도를 도입해시행하고 있는데 선배 공무원(멘토.Mentor)이 신규 임용된 공무원(멘티.Mentee)의후견인 역할을 한다는 뜻이지만 일반인들은 도대체 무슨 뜻인지 모를 일이다.
혁신, 산업 클러스터(Cluster)에서 겨우 접하기 시작했던 클러스터 개념은 최근 지역농업 클러스터, e-클러스터 등 도무지 일반 주민들에게는 낮설기 짝이 없는 어려운 외래어가 아무런 거리낌없이 사용되고 있다.
문제의 심각성은 정부 정책개발 단계부터 난해하고 어려운 영어식 외래어가 그대로 사용되고 산하 기관이나 지자체에서도 그대로 여과없이 정책과 시책으로 고스란히 옮겨지는 악순환을 반복하고 있다.
농민 박모(56.의령군 정곡면) 씨는 "가뜩이나 자유무역협정(FTA) 등과 관련해 농업개방에 강한 거부감을 갖고 있는데 지자체 스스로 알아듣지도 못하는 꼬부랑말을 그대로 사용해 솔직히 거부감이 생긴다"고 말했다.
이처럼 어렵고 난해한 외래어가 무차별적으로 사용되면서 공문을 직접 작성하는 공무원들조차 특정 외래어가 무슨 의미인지 모르고 사용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경남대 국어국문학과 김정대 교수는 "지자체가 세계화.국제화를 지향하는 것이마치 영어를 사용하는 것처럼 주민들에게 잘못된 생각을 심어주는 것이 큰 문제"라며 "말이 오염되는 것은 곧 문화와 정신이 오염되는 것으로 학교교육부터 사회 전반적으로 우리말과 글을 바로잡는 관심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한글학회 김계곤 회장은 "우리말이 깨끗하게 맑게 뜻이 잘 통할 수 있어야 하는데 요즘 우리말은 완전히 잡탕글이 됐다"며 "올해부터 정부가 10월 9일 한글날을 국가기념일로 제정했지만 날만 정할 것이 아니라 정부가 국민들에게 귀한 한글이 올바로 사랑받을 수 있도록 먼저 앞장서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