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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철 무기, 전쟁 그리고 인간] 쇠고기 열 다섯 근


[윤석철 무기, 전쟁 그리고 인간] 쇠고기 열 다섯 근 ImageView('','GisaImgNum_1','default','260'); 21세기의 협곡 제 6회 (무기 전쟁 그리고 인간 66회)- 쇠고기 국을 끓이는 날. 그 맛있는 냄새가 집안을 감아 돌다 담을 넘으면 ‘냄새에는 귀신’이라는 뒷집 영군 할머니가 코를 킁킁거리며 찾아오시곤 했다. 몰래 우리 식구만 먹을 수도 없고, 그렇게 해서도 안 되는 귀한 음식이었다. 국 한 대접에 밥 한 사발 맛있게 먹고 상을 물리면 모두 마음이 넉넉해졌다. 우리 식구와 영군 할머니, 그리고 동네 이장 아저씨까지 여러 사람 골고루 행복해질 수 있었다. 그처럼 쇠고기는 귀한 음식이라 특별한 날에만 먹을 수 있었다. 설과 추석명절, 기제사, 그리고 집안 어른들의 생신이 그 날들이었다. 쇠고기는 아직도 먼 옛날로 우리를 이끌고 가는 어떤 상징이다. 특별한 날과 관련된 음식이었기 때문이리라. ‘하얀 쌀밥에 쇠고기 국’이라는 북한의 처절한 구호. 그것도 상징어이기는 마찬가지다. 우리의 정서 그 바닥 깊은 곳에 더할 수 없는 안락의 기억으로 자리잡은 기분 좋은 배부름의 표현이다. 생활수준이 향상되었어도, 늘 쉽게 먹을 수 있는 형편이 되었어도 그 음식을 대하는 마음은 아직 그대로이다. 소중한 마음으로 대한다. 그 쇠고기 문제를 가볍게 다루어 큰 혼란을 겪었다. 이른바 성공했다는 사람들에게서 종종 볼 수 있는 ‘깊이 없음’과 ‘생각 없음’을 다시 보여줬다. 더 싸게 자주 먹을 수 있게 하겠다는 단순 명쾌한 경제 논리를 사람들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에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려웠던 시절에 대한 기억을 공유한다는 것이 깊은 바닥에 자리잡은 정서마저 같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정서는 그 사람의 삶 전체와 관계된다는 점을 더욱 크게 깨닫는 기회가 됐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앞으로 우리 사회가 마주하게 될 문제는 백 개도, 천 개도 넘을 것이다. 인류가 21세기 전반에 맞게 될 급류의 협곡을 얘기하다가 생뚱 맞게 웬 쇠고기 얘기인가? 앞으로 다루게 될 인류적 차원의 문제에 쇠고기가 의미하는 중요성에 생각이 미쳤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그렇게 우리 식구 모두를 행복하게 했던 쇠고기와 연결된 여러 문제들을 짚어봐야 하기 때문이다. 아르헨티나는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전 세계에 쇠고기를 수출한다. 마침, 그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Buenos Aires)에서 식탁에 오른 쇠고기를 대하자 고향 마을과 무언가 늘 헛헛하던 어린 시절이 떠 올랐다. 참 기억이란 어쩔 수 없는 모양이었다. 화덕에서 지글지글 구어지는 쇠고기 양고기를 보면서 국 끓는 냄새 구수하던 먼 옛날 시골집 부엌이 생각났으니 말이다. 쇠고기에서 시작된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져갔다. 보통 사람이 1년 동안에 마시고 사용하는 물의 총 양은 얼마나 될까? 미국의 과학잡지 Scientific America 8월호에 실린 Peter Rogers의 글 에 마침 자료가 있다. 대략 1,000 입방 미터 즉 약 1,000 톤의 물을 사용한단다. 올림픽 수영 경기장에 가득 채우는 양의 5분지 2 정도이다. 여기서 한 사람이 1년에 쓰는 물의 양이 1,000 입방 미터가 맞나 틀리나 따지는 것은 의미가 없다. 곡물 1톤(1,000 킬로그램)을 생산하는 데도 약 그 만큼의 물이 필요하다는 것만 기억하면 된다. 곡물 1톤을 사료로 먹여 소를 키우면 쇠고기 18 파운드, 즉 9 킬로그램을 얻을 수 있다.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단위지만 아직도 일반인에게는 익숙한 근(斤)이라는 단위로 환산하면 열 다섯 근이다. 단체 회식 때 불고기 45인분을 주문하면 결국 물 1,000 톤이 들어가야 만들 수 있는 쇠고기를 먹는 셈이다. 물과 햇빛과 공기가 생명의 근원이고, 땅에서 생명이 자란다. 땅의 양분을 빨아들여 식물이 자라고, 그 중 곡물이나 풀이 동물의 사료로 쓰인다. 소가 먹는 사료는 물과 햇빛과 공기와 땅, 그리고 땅이 내는 양분과 기타 요소의 합계이며 그것들의 조화로운 화학적 물리적 변형이다. 생산량을 늘리기거나 이동을 위해 또 소를 도축하여 선별, 가공, 운송, 보관, 판매하는 모든 과정에 인력과 기계와 에너지가 투입된다. 경제학자들이 즐겨 사용하는 비용과 효과라는 개념에 비추어보면 고개를 갸우뚱할 수 밖에 없는 엄청난 비용이 우리가 먹는 소고기 한 근에 투입된다. 그런데 여기에 우리는 한가지 중요한 점을 빠뜨리고 계산했다. 물과 햇빛과 공기의 가치를 포함시키지 않았다. 목축업자들이 그 돈을 원가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거저 썼기 때문이다. 그 거저 쓴 가치(Value)는 가격(Price)에 포함되지 않은 채 이전돼 오다가 우리의 식탁에서 소비되면서 정서적 가치로 전환됐다. 가격으로 표시되지 않았던 가치가 최종적으로 우리 안에 남아있게 됐다. 필자가 주목하는 것은 이제 그런 시대는 지나고 있다는 점이다. 이제까지 거저 쓰던, 그 계산하지 않았던 가치에 대하여 누군가는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 시대가 됐다는 의미다. 사람이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유지하거나 파괴된 환경을 회복하기 위해서 막대한 경비를 투입하여야 하는 세상이 됐다. 지나간 시대처럼 몸에 익은 대로 살수만은 없게 됐다. 최종적으로 우리가 그 모든 것을 지불해야 한다. 그 가치가 가격으로 표시되기 시작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것을 소비할 수 없는 시대가 온다. 가격과 가치의 불균형이 균형 쪽으로 방향을 틀면 인류의 삶은 어떻게 변할 것인가? 쇠고기 9 킬로그램 즉 열 다섯 근이 물값, 에너지 값, 땅 값, 공기 값, 인건비, 가공비, 이윤 등을 모두 포함하여 100 만이 될 수도 있고, 지역에 따라 1,000만원도 될 수 있다. 기술의 발달이 이런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을 것인가? 불쑥 “안 먹고 안 쓰면 된다”는 말을 내 뱉는 사람들도 있다. 사람이 사용하는 모든 것에 적용되는 말은 아니다. 쇠고기는 안 먹으면 그만이라고 하자. 그러나 사람이 생명을 유지하고 살아가는 한 물이나 공기 햇빛 식량은 안 먹고 안 쓰고 견딜 수 없다. 그것들에게 가격이 매겨지고, 반드시 무언가를 대가로 지불해야만 사용하고 먹을 수 있는 세상이 온다면, 지불할 수단이 없는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 돈으로 사야 된다면 돈 없는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나? 세계은행(World Bank)은 가난한 사람들을 3 유형으로 분류한다. 하루 1달러 (1,000원) 미만으로 살아가는 사람을 극빈층(extreme poverty), 하루 1달러 ~ 2 달러로 살라가는 사람을 보통 빈곤층(moderate poverty), 그리고 그 나라의 평균 수준에 못 미치는 층은 상대적 빈곤층(relative poverty)이라 부른다. 제프리 삭스가 에서 인용한 2004년 기준 자료에 따르면 현재 전 세계 인구 65억 명 중에 극빈층이 11억 명, 빈곤층이 15억 명, 즉 전세계 인구의 40% 이상이 하루 2달러 이하로 살아간다. 앞으로 다시 상세하게 다루겠지만 10억이 넘는 절대 빈곤층은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것마저 없는 사람들이다. 죽음이 이미 그들의 한 팔을 붙잡은 상태다. 이 들에게 생명유지를 위해 필요한 마실 물과 식량과 보건 위생마저도 제공하지 못하면서 지구사회의 을 얘기한다는 것은 공허한 말장난이다. 우리가 누렸던 풍요가 저들에게는 영원히 불가능할지 모를 꿈이라는 것을 숨기는 것은 위선이며 죄악이다. 저들이 겪는 물 부족, 식량부족, 사막화, 기근, 질병, 생존위협, 기후변화에 따른 고통이 저들의 잘못 때문이라고, 궁극적으로는 저들의 책임이라고 보는 사람들도 있다. 그리고 그 일이 우리가 살아가는 이 안락한 세상으로 번지지 않도록 벽을 쌓는 일에 열심인 나라들도 있다. 인류의 반을 포기한 세대가 될 것인가? 그 대가는 곧 엄청난 쓰나미(Tsunami)가 되어 우리를 덮칠 것이다. 인류의 미래를 위협하는 모든 문제 중에 가장 큰 문제가 바로 인류 자신의 문제다. 인구문제와 결합된 극도의 경제적 불균형이 시한폭탄의 뇌관이 되어 재깍거린다. 이제까지 인류는 가불(假拂)의 문명을 누리며 살았다. 언젠가는 내 봉급봉투에서 갚아야 할 것을 알면서도 지금은 갚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흥청망청 소비한 것과 같다. 후손들의 앞으로 계산 달아 놓고 몽롱한 눈으로 계속 술잔을 비운 것 같다. 그것이 모자라면 다른 사람의 몫까지 끌어다 쓰며 산 것 같다. 그러는 사이 하루 1달러 이하로 살아가는 저들도 어느새 그 빚은 같이 갚아야 할 연대채무자가 돼버렸다. 물살은 점점 빨라지고 인류가 탄 배는 협곡에 조금 더 가까워진 느낌이다. 혼자 웃는 김대리~알고보니[2585+무선인터넷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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