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오후 서울 중구 명동거리. 가히 '유커(중국인 관광객)의 쇼핑 천국'이다. 서울 한복판이지만 한국어보다 중국어가 더 많이 들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손님을 부르는 점포 직원도, 간식거리를 파는 노점상들도 온통 중국어 일색이다. 중국인 관광객 역시 당연하다는 듯이 중국어로 쇼핑을 즐긴다. 반면 2~3년 전까지만 해도 얼굴에 마스크를 쓰고 둘셋 짝을 지어 명동 골목 구석구석을 누비던 일본인 관광객들은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명동에서 오랫동안 환전영업을 해왔다는 김모씨는 "엔화를 가져와 돈을 바꿔가는 사람들이 정말 많이 줄었다"며 "예전에는 엔화 뭉칫돈 환전손님도 심심찮게 있었지만 요즘은 대부분 만엔 정도 환전해 간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그나마 중국과 동남아시아 관광객들이 예전보다 많이 찾아와주는 덕분에 영업을 계속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2년 새 엔저 심화 현상과 중국인의 관광 소비력 증가가 맞물리면서 명동 쇼핑상권의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었다. 한국 쇼핑에 대한 부담이 커진 일본인의 발길이 급감하는 동안 구매력이 커진 중국인의 방문은 급증하면서 백화점·면세점·호텔에서 의류 로드숍, 리어카 맛집에 이르기까지 영업의 무게중심이 모두 일본인에서 중국인으로 일제히 이동한 것. 서울시 통계포털인 서울통계에 따르면 올 들어 지난 7월까지 서울을 방문한 중국인은 336만1,654명으로 지난해에 비해 45.8% 늘었다. 반면 일본인은 133만5,626명으로 지난해보다 13.68% 감소했다.
화장품 브랜드인 미샤 명동 매장 측은 "일본어 능통 직원 수가 우리는 물론 다른 브랜드 가게도 전반적으로 많이 줄었다"며 "일본인 관광객들의 구매력 역시 많이 떨어져 꼭 필요한 제품이 아니면 선뜻 구매하지 않기 때문에 중국인에 더 집중한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현장에서 만난 일본인 관광객 요코 미조씨도 "2년 전에 한국을 방문했을 때보다 물건값이 많이 비싸게 느껴져 이번에는 쇼핑하는 데 고민을 많이 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때 한국어보다 일본어 가격표를 더 크게 붙여놓고 영업을 했던 명동 마사지·스파·네일케어숍들도 마찬가지다. 일본인 관광객이 주 고객이던 이들 점포들은 엔저 직격탄을 맞아 일부는 가게 문을 닫았고 일부는 소셜커머스를 통해 내국인 손님을 모시거나 중국인 대상 영업을 강화해 가까스로 살아남았다.
길 건너 롯데쇼핑타운에도 유커가 고마운 손님이다. 국내 불황으로 소비위축은 물론 명품관과 면세점 등지에서 큰손 역할을 해줬던 일본인이 떠난 자리를 대신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롯데백화점의 경우 2009년만 해도 전체 외국인 매출의 70%를 일본인이 차지했지만 현재는 중국인 매출 비중이 80%를 넘어섰다. 일본인 비중은 5% 내외에 불과하다. 동일본 대지진에 이어 엔화가치 하락, 한일 정치문제 등이 줄줄이 이어지면서 일본인의 방문과 구매력이 동시에 급감한 탓이다. 롯데면세점도 2012년부터 일본인 매출 기여도가 급격히 떨어지기 시작했다. 롯데면세점의 일본인 매출은 지난해 전년 대비 30% 가까이 줄어들었고 올 들어서도 상반기까지 전년 동기 대비 25% 감소했다.
호텔업계도 빠져나간 일본인을 대신할 손님 찾기에 혈안이다. 업계에 따르면 A호텔의 경우 한때 전체 투숙객 중 60%가 일본인이었으나 지금은 30%대로 뚝 떨어졌다. 이에 따라 해당 호텔 측은 중국을 비롯해 동남아 관광객 유치를 위해 로드쇼와 해외 프로모션을 강화하고 있다. B호텔 역시 일본인 관광객이 30% 이상 급감해 대신 중국인 관광객 유치를 위해 관련 마케팅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호텔업계의 한 관계자는 "언뜻 보면 국내 호텔을 이용하는 일본인 수가 별로 줄지 않은 듯하지만 좀 더 들여다보면 과거 특1급을 이용하던 일본인들이 중저가 호텔로 이동하고 식음료 경비 등에 쓰던 비용도 줄이고 있다"며 "영업 손실을 만회하기 위해 중국·동남아 등으로 판촉 대상을 확대하고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