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3월14일] 엘리 휘트니

원가 수십달러짜리 기계 하나가 세상을 바꿨다. 흑인 노예가 급증하고 전쟁이 터졌다. 기계의 이름은 조면기(Cotton Gin). 목화의 씨와 솜을 분리하는 장치다. 발명자는 예일대학을 갓 나온 28세의 엘리 휘트니. 학비가 없어 법률 공부를 접고 부유한 농장에서 가정교사로 일하다 조면기를 발명, 1793년 3월14일 특허를 얻었다. 기계구조는 간단했다. 판자와 크랭크축, 크고 작은 원통형 밀대, 벨트가 전부였다. 조면기가 나오기 전까지 1인당 하루 목화솜 생산량은 평균 1파운드. 씨를 분리하는 작업에 손이 많이 갔다. 조면기는 생산량을 1,000배 가까이 늘려줬다. 대량 생산된 솜은 영국으로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영국은 미국산 목화로 만든 의류를 전세계에 뿌렸다. 영국이 세계의 공장으로 등장하고 산업혁명의 위력을 실감한 각국이 산업화에 나선 것도 이 무렵이다. 농장주들도 180도 변해 노예제도 반대론의 근거지였던 남부는 수탈과 인권말살의 장소로 뒤바뀌었다. 목화를 따는 흑인 노예는 곧 돈이었으니까. 노예 가격도 1790년 300달러에서 1850년 2,000달러로 뛰었다. 노예 수는 65만명에서 320만명으로 불어났다. 경제주도권과 노예제도를 둘러싼 남부와 북부의 갈등은 더욱 깊어져 결국 사상자 97만여명을 낸 남북전쟁으로 번졌다. 발명가 휘트니는 조면기 사업에서 실패한 후 군수산업에서 큰 성공을 거뒀다. 주요 부품을 규격화한 그의 소총은 북군의 승리를 이끈 요인으로도 꼽힌다. 헨리 포드가 꽃 피운 대량 생산도 그에게서 비롯된 것이다. 조면기 사업에서는 왜 큰돈을 만지지 못했을까. 욕심이 과했던 탓이다. 이익의 40%를 로열티로 요구받은 농장주들은 아예 기계를 베꼈다. 미국도 왕년엔 그랬다. 불법복제의 소굴.

관련기사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