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동십자각] 빚 권하는 사회


일제 식민지 시대. 남편은 오늘도 술에 취해 새벽이 돼서야 집에 들어온다. 아내는 "누가 이렇게 술을 권했느냐"고 매일 타박이다. 남편은 "조선 사회가 술을 권한다"고 푸념하면서 또 다시 밖으로 발길을 향한다. 멀어지는 남편의 발자국 소리를 원망하면서 아내가 탄식한다. "몹쓸 사회가 왜 술을 권하는고!" 1921년 발표된 현진건의 단편소설 '술 권하는 사회'의 내용이다. 암울한 식민지 시대에 무능력자로 전락한 남편은 술로 허송세월을 보내고 이를 안타깝게 지켜보는 아내는 술 권하는 사회구조를 날카롭게 꼬집는다. 그리고 90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우리는 '빚 권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 지난 9월 말 현재 가계 빚은 892조5,000억원으로 사상 최고다. 올 들어 3개월마다 가계 빚이 10조원 이상 급증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올해 안에 900조원을 넘어설 것이 분명하다. 2002년 말 가계 빚이 464조원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9년도 못돼 가계 빚이 두 배가량 가파르게 늘었다. 가계 빚이 세포분열을 일으키며 자가증식을 계속하고 있다. 가계 빚은 금융회사와 가계, 정부가 만들어낸 합작품이다. 국민ㆍ우리ㆍ신한ㆍ하나 등 국내 뱅킹산업을 대표하는 4대 은행들은 해외시장에서 새로운 수익원을 찾으려는 노력은 게을리한 채 '금리 따먹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대출을 늘리면 늘릴수록 이익이 늘어나는 수익구조에 함몰돼 있다. 보험사들도 약관대출 영업에 재미를 붙였다. 보험사 대출은 2ㆍ4분기에 5,000억원 불어났고 3ㆍ4분기에는 3조원이나 급등했다. 속된 말로 거침없는 하이킥이다.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이후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는 미국 가계의 저축률이 한국 저축률을 앞선 것은 많은 것을 반성하게 한다. 가장 큰 책임은 정부에 있다. 가계 빚을 경고하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고 있지만 감내할 만한 수준이라며 태평이다. 기획재정부와 금융감독원은 한국은행이 금리정책을 제대로 구사하지 못하고 있다며 변명하고 있고 한은은 정부가 문제의 심각성을 간파하지 못하고 있다고 맞대응하고 있다. 이렇다 할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팔짱만 끼고 있는 가운데 가계 빚 거품은 부풀대로 부풀었다. 오늘도 기자의 스마트폰 메시지에는 금융대출 광고가 들어온다. 금융당국이 만시지탄(晩時之歎)에 빠지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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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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