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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규찬은 지난 89년 열린 '제1회 유재하 음악경연대회'에서 '무지개'로 1등을 차지하면서 그의 이름 석자를 팬들에게 각인시켰다. 작사ㆍ작곡의 재능을 겸비한 싱어송 라이터의 출현이었다. 그는 수줍음을 타는지 아니면 낯가림을 하는지 9장의 음반을 낸 가수답지 않게 청중들에게 먼저 다가서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실력을 간파한 청중들이 그를 먼저 찾았고, 장안의 화제를 불러 모았던 '나는 가수다'(이하 나가수)에서도 그를 찾을 정도였다. 모처럼 TV에 얼굴을 내비쳤던 그의 첫 마디는 작별인사였다. /편집자주
"휴학 중 이었어요. 일리노이대학교 어버너섐페인대학원에서 재즈를 공부하는 중이에요. 콘서트를 마치고 다시 미국으로 공부하러 갑니다. 학기당 이수하는 학점에 따라 복귀 시기가 결정되겠지요."
'언제 돌아 올거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예의 차분한 어투로 대답을 했다.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한 그는 그 바탕에 음악을 덧칠해서 우송정보대학 전임교수로 강의를 하고 있었다.
기자는 개인 견해지만 나가수에 출연했던 그가 실력을 제대로 발휘하기도 전에 물러났다고 생각하는 편이었다. 한편으로는 '소리를 내지르는 가수들이 주도하는 그 무대에 왜 그가 뛰어들었을까' 하는 궁금증도 있었다.
"음악이라는게 승부가 아니잖아요. 그걸 믿는 음악인으로서 '이제까지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법한 음악 자체만을 듣고자 하는 청중들을 만날 기회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실체 없는 자존심에 얽매여서 동굴 속에 갇혀 있는게 잘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고요. '나가수'는 톱가수를 경쟁에서 떨어뜨린다는 모티브로 주목을 받은 프로그램입니다. 예견은 했지만 그래도 그 프로그램에 나갈 결심을 한 것은 그 많은 청중들을 만나는 것을 회피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프로그램 시청률을 위한 선정성이 깔려 있다고 해도 '누가 탈락하느냐'에 흥미를 가지고 바라보는 것은 시청자의 몫이니까요."
그는 근래 보기 드물게 자기가 추구하는 음악에 대한 철학이 확고한 가수였다.
"사실 PD도 걱정했어요. '이별이란 없는 거야'를 경연곡으로 선택했는데 방송 스태프들 조차도 '이 노래로 상위권을 생각하느냐?'고 물을 정도였어요. 하지만 저는 목적이 분명했어요. 상위권은 차지하고 오래 버티는 것 자체는 의미가 없었고요. 한 라운드를 하더라도 내 음악 내 색깔을 내고 내려오고 싶었어요."
그런 그가 읊조리듯 노래하거나, 다른 가수와 화음을 맞출 때 그의 목소리는 더욱 윤기가 흐르고 그의 모습은 훨씬 단단해 보였다. 그에 대한 본인 생각은 어떨지 궁금했다.
"나름대로 이유가 있겠지요. 사람들은 저를 보고 발라드 가수라고 하지만 저는 발라드 가수로 한정지어 지기에는 발라드 곡이 몇 곡 없어요. 9장의 솔로 앨범을 놓고 보면 모두 제가 작곡ㆍ작사를 했는데 리듬이 강조됐고, 음악적 실험이 있었지요. 어떻게 보면 내가 대중적으로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에 생겨난 괴리라고도 볼 수 있지요." 그런 대답을 들으니 그의 안으로 한 발짝 더 다가서고 싶었다. 그래서 '본인이 좋아하는 창법과 팬이나 타인들이 들어서 좋다고 하는 창법 사이에 괴리는 왜 발생하는지' 물었다.
"유치하고 수준이 낮아서 대중성이 확보된다는 생각에는 동의를 못합니다. 음악을 듣는 불특정 다수 만큼 해박하고 깊이 있는 주체는 없거든요. 음악을 할 때 공감을 얻기 위한 계산 아래 음악을 만드는 것은 교만이라고 봐요. 내가 생각하는 것과 대중이 생각하는 것 사이의 괴리 때문이 아니고 팬들이 원하는 경지에 다다르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반성합니다."
그를 기다릴 팬들에게 남기고픈 말은 없느냐고 물었더니 그가 답했다.
"나름대로 노력은 하고 있는데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았던 것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하지요. 그렇다고 손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니고요. 그 정성을 모아서 공연에 투자했으니 많이 찾아주시고요. 나가수에서 조규찬의 음악적 공존은 계속된다고 마지막 멘트를 남겼던 것처럼 팬 여러분도 제 곁에 계셔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묻는 질문 마다 자로 잰 듯 정확하게 되돌려주는 이 남자, 조규찬은 오는 29일부터 1일까지 열리는 연세대학교 100주년기념관에서 열리는 '조규찬 콘서트 2012'를 끝으로 유학길에 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