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열 세개의 무덤이 있다. 다름 사람도 아닌 명나라 황제들의 13릉이다. 무덤을 파면 저주를 받는 것일까. 미신은 그렇게 말한다. 그러나 명 13릉을 발굴한 사람들이 겪는 고초는 미신이 아니라 정치였고, 이데올로기 싸움이었다.중국의 위에 난과 양스가 자신들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황릉의 비밀」은 역사에 대한 매우 흥미로운 보고서이자 한 시대(문화대혁명), 그리도 또 한시대(중국 명나라)를 관통하는 시간여행이다.
명 십삼릉이란 무엇인가. 북경시내에 있는 명 황실의 황릉이다. 13개 능묘 가운데 정릉만 발굴되었다. 현재 관람객에게 개방되어 있다. 정릉은 명의 13대 황제인 만력제 주익균(1573-1617 재위)이 묻힌 곳이다.
정릉 앞에 웃고 떠드는 관광객 옆에 한 노인이 눈물어린 얼굴로 조용히 서 있다. 그의 상념은 40여년전 청년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때는 1956년. 중국의 북경. 명나라 역사의 권위자 오함은 정부에 명 십삼릉 발굴을 허가해 달라고 요청한다. 명 십삼릉 발굴은 그의 평생의 꿈이었다. 하지만 고고학의 권위자 하내가 반대하고 나선다. 이 문제를 놓고 중국의 문화계가 논쟁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주은래 수상이 발굴을 허가한다.
책의 내용은 이렇게 해서 정릉의 발굴에 성공한 오합의 역사 회상으로 넘어간다. 임진왜란 때 원군을 파견했던 정릉의 주인공 만력제는 바로 명나라 쇄망을 몰고온 주역이었던 것. 중국의 모든 역량이 정릉의 조성사업에 몰리고 있을 당시, 만주에서는 누루하치가 청나라를 세워 대륙을 위협하고, 멀리 서양에서는 서구 열강의 대선단이 아시아의 바다로 향하고 있었던 것이다.
한편 정릉의 발굴이 완성되던 시점인 1957년 중국 대륙에는 문화대혁명의 회오리가 불어닥치고 있었으니. 이 동란에 불을 지핀 주역으로 떠오른 인물이 바로 정릉 발굴에 나섰던 오함이었던 것. 당시 모택동은 명나라의 청백리 해서를 찬양하는 글을 오함에 부탁했는데, 이 글이 난을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된 것. 봉건 귀족인 해서를 찬양했을 뿐만 아니라 중국 황제의 무덤을 숭상하는 오함을 비난하는 운동으로 문화대혁명이 명분을 얻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이처럼 하나의 무덤을 계기로 해서 중국의 근현대 역사를 아우르는 매력을 발산하고 있다. 물론 여기에는 격동의 한 시대를 살았던 지식인들의 고뇌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황릉의 비밀」은 역사에 대한 흥미로운 체험이자, 지식인들의 고뇌를 읽을수 있는 재미를 제공해주는 사실담이다. 유소영 옮김. 일빛 펴냄. /이용웅 기자 YYONG@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