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 7월1일, 새벽. 서독에서 동독으로 향하는 수송차량이 끝없이 이어졌다. 모두 1,000톤에 가까운 무게의 화물은 돈. 독일 통일에 앞서 단행된 경제ㆍ사회통합의 핵심인 화폐통합을 위해 250억서독마르크(DM)가 동독 지역으로 보내졌다. 서독 경제의 동독 접수와 함께 국경도 없어진 이날 헬무트 콜 서독 총리는 ‘우리는 이 순간을 45년 동안 기다려왔다’고 말했다.
동독 주민들은 부자가 된다는 희망에 젖었다. 암시장에서 동독마르크의 5~20배로 거래되던 DM을 공식 환율인 1대1 비율로 교환해줬으니까. 무한정 등가교환이 아니라 연령별로 2,000~6,000마르크까지만 1대1로 교환해주고 나머지는 2동독마르크 대 1DM 비율을 적용했지만 동독 주민들은 일시적으로나마 큰 돈을 만졌다.
서독 연방은행 총재를 비롯한 경제 전문가들의 반대에도 콜 총리의 결심으로 단행된 등가교환에 대한 평가는 아직까지도 제 각각이다. 선심성 정책으로 동독인들의 환심을 샀을 뿐 가뜩이나 취약한 동독 지역 기업들의 경쟁력을 더욱 떨어뜨려 통일비용 폭증을 낳았다는 비판과 독일을 구한 결단이라는 찬사가 공존한다. 등가교환이 없었다면 동독 주민들의 서독 이주로 사회불안이 야기됐을 것이라는 평가도 있다.
화폐통합과 동독 사회주의 경제의 퇴장은 연말에나 가능할 것 같았던 완전통일을 10월3일로 앞당겼다. 동독의 마르크시즘이 서독의 마르크이즘에 무너진 셈이다. 화폐통합 19주년을 맞은 독일의 경제는 통일비용 부담 속에서도 되살아나는 분위기다. 자본과 민주주의의 승리라고 말할 수 있다.
독일통일 과정을 회상하며 대한민국을 본다. 민주주의는 안녕한가. 일방통행과 민주주의 후퇴, 공권력 남용 논란이 일고 있는 이 땅의 현실은 동독과 서독 어느 쪽에 가까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