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대외신인도를 상징하며 세계 각국의 부(富)의 저장수단이었던 미 재무부 채권(TB)이 안팎에서 홀대를 받고 있다. 내부에서는 안전자산 선호 감소와 인플레이션 기대심리로 수익률이 급상승하며 실물경기 회복의 발목을 잡는 존재로 여겨지고 있고 외부에서는 브릭스(BRICs) 국가들을 중심으로 한 매입 축소 움직임으로 천덕꾸러기 신세가 됐다. 월스트리트저널(WJ)에 따르면 오는 16일 브릭스 첫 정상회의를 앞두고 러시아에 이어 브라질도 미 국채 대신 IMF 채권 매입을 확대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브라질 대통령은 10일(현지시간) “지난 4월 런던에 열린 주요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합의한 대로 국제통화기금(IMF) 재원 확충을 위해 100억달러를 내놓을 방침”이라면서 “이는 달러표시 미 국채 대신 IMF 채권을 매입하는 방식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러시아 중앙은행 간부도 이날 “보유한 미국 국채를 점차 매각할 것”이라면서 “대신 IMF가 곧 발행할 채권을 사겠다”고 말했다. 브라질ㆍ러시아 모두 미 국채 투자에는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는 이야기다. 이들 국가는 나아가 미 국채 보유액을 줄일 수 있다는 입장을 감추지 않았다. 러시아 관영통신 리아노보스티에 따르면 러시아 중앙은행의 알렉세이 울유카예프 부의장은 “보유외환의 30% 이상이 미 국채에 투자돼 있다”면서 “단계적으로 미 국채 보유를 줄이고 대신 특별인출권(SDR)의 액면 형태를 취할 IMF 채권을 매입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러시아는 총 보유외환(4,000억달러) 중 30% 이상을 미 국채로 가지고 있으며 브라질의 이달 초 기준 보유외환 규모는 약 2,047억달러다. 브릭스의 또 다른 주축인 중국과 인도의 입장도 유사하다. 중국 관영통신인 신화사는 5일 중국 외환관리국 책임자의 말을 인용해 “투자가 안정적이고 합리적인 수익이 보장된다면 중국이 최대 500억달러의 IMF 채권을 매입할 의향이 있다”고 전했다. 중국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2조달러의 외환을 보유하고 있다. 환경이 열악해지면서 미 국채 가치는 크게 떨어졌다. 러시아와 브라질의 입장 표명이 전해진 10일 미 국채 10년물 수익률은 한때 3.99%에 달해 지난해 11월 초 이후 최고치를 나타냈다. 이날 미 재무부가 재원조달을 위해 10년 만기 국채 190억달러어치를 매각한 것도 국채 가격 하락을 부채질했다. 이에 따라 뉴욕증시도 이날 시중금리와 국제유가가 동반 상승해 경기회복의 어려움이 가중될 것이라는 우려로 약세로 마감했다. 채권시장 관계자들은 미 국채 10년물은 수익률 4%가 ‘심리적 저항선’이라면서 금융위기가 심각했던 지난해 10월 이 수준을 초과했음을 상기시켰다. 브릭스 국가들이 미 국채를 홀대하는 이면에는 IMF 등 국제기구에서의 영향력 강화를 노린 포석이라는 분석도 있다. IMF는 출자비율에 따라 투표권을 주기 때문에 미 국채 대신 IMF 출자를 늘려 발언권도 확보하고 달러 위상을 흔들어 브릭스 국가들의 통화를 결제수단으로 더 많이 이용하도록 하겠다는 복안이라는 설명이다. 그렇다고 해도 단기에 달러 위상이 흔들리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국제외환시장 관계자들은 최근 러시아의 입장과 관련해 “울유카예프의 발언과 달리 러시아는 달러를 포기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다”라며 “원자재 결제가 대부분 달러로 이뤄지는 현실에서 원자재 의존도가 높은 러시아의 운신은 제한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