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기자의 눈] 비상인가? 비상식인가?

비상이라고 사이렌을 울렸다. 당 지도부가 물러나고 비상대책위가 들어섰다. 한바탕 판을 깨고 열린 비상대책회의, 그런데 어쩐지 허무개그를 보는 느낌이다. 한나라당 비상대책위(비대위)이야기다. 비대위는 이제 겨우 두 번 회의를 열었을 뿐이다. 하지만 첫 회의부터 조짐은 좋지 않았다. 지난 12일 첫 회의에서 김성조 비대위원은 지역구인 경북 구미의 단수 사태 이야기를 꺼냈다. 16일 두 번째 회의에서 차명진 위원은 북한 인권법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처리를 강조했다. 두 위원의 이야기 자체는 집권당으로서 필요한 지적이었다. 특히 구미 단수 사태는 당장 지역민의 사활이 걸린 위중한 문제다. 하지만 4ㆍ27 재보선 이후 새로 지도부를 뽑기 위한 전당대회의 규정을 결정하는 비대위에서 할 말은 아니었다. "전당대회를 준비하는 데 모든 일을 집중해야 한다. 오늘 끝낼 수 있으면 끝내자(12일 비대위, 차명진 위원)"는 말처럼 비대위는 약 두 달가량 동안 당 쇄신을 위한 전당대회를 준비하는 임시 기구다. 오는 30일까지 짧은 기간 동안 우선 차기 대권주자 진영과 민감한 당헌 개정을 논의한다. 19명의 비대위원이 사실상 소장파, 친이명박계, 친박근혜계를 대표하는 이유도 결정 과정에서 논란을 줄이기 위해서다. 짧은 기간 전대 논의를 해도 부족할 시간인데 언론에 공개되는 모두 발언 시간에 비대위와 상관 없는 발언을 내놓은 것이다. 그렇다고 비대위가 구미 단수 사태나 북한 인권법 처리를 논의한 것도 아니다. 지난해 6월 지방선거 패배 이후 꾸린 비대위를 거쳐 이번에 다시 비대위에 앉은 정용화 위원은 첫 회의에서 "작년 비대위를 생각하면 날을 새서라도 당의 진로를 모색하는 토론을 기대했는데 전당대회를 준비하는 형식적인 비대위였다"면서 "이번에도 그렇게 한다면 사퇴할 생각"이라고 꼬집었다. 그의 비판이 무색하게 한나라당의 이번 비대위는 비상에 대응하기 위한 건지, 비상식적인 말 잔치를 하기 위해선지 벌써부터 아리송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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