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파이낸셜 포커스] 은퇴자까지 발급… 도 넘은 은행 실적 지상주의

●급여통장의 두 얼굴<br>금리우대 등 혜택 앞세워 무분별한 상품 판매<br>50대이상 가입자 20% 육박… 20대보다 많아


지난해 말 30여년 다니던 직장에서 정년 퇴직한 이충수(가명)씨는 최근 개인업무 차 은행을 방문했다. 볼일을 마치자 은행 직원은 이씨에게 예금상품 가입을 권했다. 금융 수수료 면제, 금리우대 등이 가능하다는 설명도 뒤따랐다. 이씨는 직원의 간청에 못 이겨 예금상품에 어쩔 수 없이 가입했다. 하지만 이씨는 이내 해당 상품이 급여자 전용상품인 '급여이체통장'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정년 퇴직한 사람이 웬 급여 통장"는 말이 나왔지만 쓴웃음을 짓고 말았다.

직장인이라면 하나쯤 갖고 있는 '직장인 급여이체통장'의 이용자 중 15% 이상이 잠재적 은퇴연령대인 50대 이상 장년층인 것으로 나타났다. 특정은행의 경우 이들 계층의 가입비율이 20대보다 높은 곳도 있었는데 은행의 실적지상주의가 무분별한 상품판매로 이어진 결과라는 지적이다.


2일 금융계에 따르면 모든 시중은행들은 1개 이상의 직장인 급여통장 상품을 판매하고 있다. 급여통장은 급여 이체자에게 ▦수수료 면제 ▦금리우대 등의 금융혜택을 제공하는 상품으로 직장인이 필수적으로 갖춰야 할 금융아이템 중 하나로 꼽힌다.

흥미로운 것은 급여통장의 연령대별 분포현황이다.

국민은행의 '직장인우대종합통장'의 경우 전체 발급좌수 중 50대 이상이 차지하는 비중은 19.5%로 20대인 15.9%보다 3.6%포인트 높다. 은퇴를 앞둔 세대가 새내기 직장인이 많은 20대보다 급여통장을 더 많이 발급 받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다른 은행 사정도 마찬가지다. 하나은행(늘하나 급여통장)은 50대 이상 비중이 17%에 달했고 '직장인통장'과 '내지갑 통장' 두 개의 급여통장을 판매하고 있는 SC은행의 경우 50대 이상 비중이 17.6%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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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마 신한은행 '직장인통장'의 50대 이상 비율이 13.8%로 낮은 편이다.

은행들은 해당 상품이 직장인 급여통장을 표방하고 있지만 일반인에게도 다양한 금융혜택을 제공하기 때문에 장년층 이상 비율이 높은 것이 이상한 결과는 아니라고 주장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제공하는 금리 수준이 다른 상품에 비해 뒤떨어지지 않는다면 비급여자도 급여이체 통장에 가입할 수 있지 않느냐"고 항변했다.

그러나 급여통장은 급여이체를 전제로 부대혜택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은행의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결국 정기적인 급여소득이 없는 장년층 고객이 급여통장을 만들 수밖에 없는 배경에는 은행의 실적지상주의가 있다.

실제로 SC은행이 지난 6월7일 출시해 급여통장으로 운영하고 있는 '내지갑 통장'의 경우 50대 이상 가입자 비율은 26.3%로 30대(27.7%), 40대(26.9%)와 비교해 별반 다르지 않다. 이 상품은 기존 직장인통장과 달리 급여이체 단서를 달지는 않았지만 매월 최소 1회에 걸쳐 건당 70만원 이상 입금해야 한다는 조건을 내걸었다.

서울의 한 시중은행 지점에서 근무하는 창구 텔러는 "은행 상부에서 내려오는 판매 지침을 따르려면 고객에게 필요하지 않는 상품도 팔 수밖에 없다"며 "고객에게는 미안한 마음 뿐"이라고 말했다.


박해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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