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금리(1년이상 2년미만 수신금리)는 지난해 0.3%수준에서 올해 2·4분기중에는 0.2%수준으로 떨어졌다. 그럼에도 일본인의 저축률은 올해 1·4분기중 36.2%를 기록했다.이에비해 미국은행의 수신금리는 지난해 평균 4.31%로 미국보다 20배 이상이나 된다. 그럼에도 미국인들은 은행에 저축을 하려하지 않는다. 7월중 미국인의 개인가처분소득은 6조3,240억달러로 전월보다 0.1% 늘어났으나 개인소비지출은 6조2,040억달러로 0.4% 늘었다. 번 것 이상으로 썼다는 얘기다. 이에따라 개인저축률은 -1.4%로 전달보다 더 떨어졌다.
영국의 주간 이코노미스트 최근호 보도에 따르면 미국의 민간부문의 금융순여신(빚)이 5%에 이르고 있다는 것이다. 이코노미스트는 이같은 수치를 근거로 미국경제의 버블(거품)이 세계경제의 최대위협이 되고 있다고 경고했다.
일본의 금리 0%와 높은 저축률은 이자가 싼 산업자금의 풍부한 원천이고, 이 돈으로 제품을 만들어 파는 기업들에게 국제경쟁력을 갖게해 준다.
미국사람들의 버는 대로, 또 버는 것 이상으로 쓰는 소비성향은 미국을 거대한 소비시장으로 만들고 있으며 미국경제의 성장을 견인하고 있다.
국민들이 돈을 펑펑 쓰는데도 미국경제는 8년째 잘 나아가고 있다. 반면 알뜰하게 저축을 하고, 부지런히 물건을 내다팔아 무역수지 흑자가 수천억달러에 이르는 일본경제는 장기침체를 겪고 있다. 이는 경기순환론을 뒤엎는 것으로 경제학교과서를 새로 써야한다는 얘기마저 나온다.
최근들어 이같은 현상에 변화의 조짐이 일고 있다.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가 연말까지 3,000억달러에 이르고, 무역적자가 작년보다 50%정도 늘어난 2,470억달러에 이를 전망이다. 버는 것 이상으로 쓴 것의 당연한 귀결이다. 많이 쓰니까 세금만은 잘 걷혀 99회계년도 재정수지는 1,000억달러 이상 흑자를 기록할 것으로 예측되나 미국의 경상적자와 무역적자가 쌓여가는 것은 세계경제에 불안요인이다.
반면 일본경제는 회복국면을 보이고 있다. 엔화가치의 상승은 이의 단적인 반영이다. 엔강세를 꺾는 것이 G7회의나 IMF총회의 주요의제가 되고 있으나 나라마다 이해가 갈려 대책마련이 쉽지않다.
이같은 현상에 대해 미국 조지 워싱턴대 경영대학원장인 수전 필립스교수는 최근 전경련이 주최하고 서울경제신문이 후원한 강연회에서 이렇게 진단했다.
『미국인들의 소비성향은 장래에대한 자신감에서 비롯된 것이다. 자신감의 원천은 미국경제의 장기호황, 특히 증시의 활황에 기인한 것이다. 쓰고 또 벌면 된다는 생각이 지배하고 있다. 실직을 하더라도 다시 취직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그런 현상을 낳았다고 본다. 이에비해 전통적으로 저축을 선호하는일본인들은 평생직장개념이 흔들리면서 미래를 불안하게 여겨 더욱 저축을 많이하는 것 같다』
두나라의 관계는 생산과 소비라는 측면에서 상호 조화관계에 있지만 대결국면으로 치달을 위험이 상존한다. 이 균형이 깨지면 세계경제는 위태로와진다.
두나라의 0%가 어떤 결과를 나타낼지 세계가 주목하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양국관계를 통해 우리의 현실을 비춰보자. 우리는 저축도 많이하지만 쓰기도 잘 쓴다. 미국과 일본을 합쳐놓은 꼴이다. 저축률은 33%선이지만 빚이라면 황소도 잡아먹는 다는 속담이 여전히 통용되는 사회이다.
빚 무서운 줄 모르다 얻어맞은 것이 IMF사태이다. IMF이후 빚이 무섭다는 것을 조금 배우기는 했으나 경기가 살아나는 듯하자 금새 그것을 잊어먹은 듯 소비과열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한국사람의 극단적인 소비성향을 보여준 예가 98년의 무역수지 흑자규모이다. 허리띠를 졸라매자고 맘먹으니 한해에 400억달러 가까이나 쓰임새를 줄였던 것이다. 그것은 역설적으로 말해 IMF를 통해 우리가 얻은 최대의 자신감이다.
우리의 증시나 고용시장이 미국만큼 기반이 튼튼하지 않다는 점에서 소비를 미국식으로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0%의 금리에도 36%대의 저축률을 기록하고 있는 일본에 비해 일본보다 이자를 30배나 더 쳐주는데도 저축률이 그보다 못한 것 역시 문제이다.
아직은 좀 더 덜 쓰고, 더 저축하는 것이 우리가 가야 할 길이 아닐까.
林鍾乾편집국차장IMJK@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