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일본:3/“춘투는 없다” 노사화합속 21C 견인(경제를 살리자)

◎고베지진 내수 5조엔 창출… 불황탈출 역이용/경제전쟁 대비 금융기관 「빅뱅」 이미 시작2년 몇 개월 전인 지난 95년 1월17일 상오 5시46분. 효고(병고)현의 현청소재지이자 인구 1백50만으로 일본에서 가장 많은 물동량을 자랑하는 항구도시 고베는 아직도 미명이었다. 갑자기 앞 바다에 떠있는 아와지(담로)섬 쪽에서 『쿵』하는 엄청난 굉음과 함께 강력한 충격이 고베시 전역을 뒤흔들었다. 30초간 계속된 이날 지진은 일본의 대도시를 급습한 지진 가운데서는 처음으로 횡파와 종파가 동시에 온 최악의 직하형이었다. 매그니튜드7.2로 진도는 7. 지난 23년 동경을 강타한 관동대지진과 같은 급의 이 지진으로 4천5백67명이 죽고 1만4천6백79명이 부상했다. 재산피해는 어림잡아 5조엔(한화 약 37조 5천억원). 이 해 중앙정부예산의 거의 13분의 1을 한 순간에 날려보냈다. 간접피해까지 포함하면 10조엔(75조원). 세계각국은 「슈퍼 엔고」에 고베 대지진까지 겹친 일본의 경제가 여간해서는 주름살이 펴지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이같은 예상을 뒤엎고 그해 일본은 전후 사상 최고인 4천4백29억달러를 수출하고 3천3백61억달러를 수입, 1천68억달러의 흑자를 기록한 것이다. 고베 대지진으로부터 2년 4개월. 지금 고베시는 지진의 흔적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거의 복구가 끝나 시가지는 지진전보다 훨씬 더 활력이 넘치고 있었다. 고베시 관계자는 『전반적으로 볼때 복구현황은 80∼90%선』이라고 밝히고 내년 말까지는 복구사업이 완전 마무리 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고베시가 이같은 엄청난 재해로부터 재빨리 일어 설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일까. 그것은 일본인 특유의 질서의식과 시민정신, 그리고 근면성에서 비롯된다. 여기에는 중앙정부의 재빠른 지원과 세계 최첨단의 기술력이 뒤따라 주었음은 물론이다. 지진으로 집도 잃고 가족도 잃어 경황이 없는 와중에서도 고베 시민들은 질서만은 지켰다. 이 질서의식은 당시 지진의 참상을 취재하기 위해 현장에 파견된 기자들의 르포에서 한층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대지진 뒤끝의 고베는 우선 물이 가장 귀하다. 고베 시민들은 지금 전국 각지의 생수 생산업체들이 무료로 보내준 생수로 갈증을 해결하고 있다. 그러나 고베의 여성들은 갈증이 나더라도 물을 잘 마시지 않는다. 물을 마시면 화장실을 가야 하는데 집도 없으니 어떻게 해결할 수가 없다. 뒷골목에 가서 방뇨하면 되지만 이는 시민정신에 반하는 일이다.』 또 일시적인 치안부재 현상에 따른 약탈이나 절도도 없었다. 물론 사재기도 없었다. 고베 대지진은 6만동의 가옥을 전파시키고 5만5천동의 가옥을 반파시켰지만 도시 기간시설은 비교적 피해가 덜했다. 그것은 모든 기간 시설물은 진도 7.9에도 견딜 수 있도록 내진설계가 의무화 된 탓이다. 이처럼 기간시설이 제기능을 발휘했기 때문에 복구가 빠를 수 있었다. 일본의 경제전문가들은 고베 대지진은 불황에 허덕이는 일본경기를 회생시켜주는 자극제가 됐다고 진단한다. 즉 5조엔에 달하는 새로운 내수시장이 출현, 특히 건설 경기를 일으키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는 지적이다. 한 경제전문가는 『한국에서는 한보가 대출한 5조원으로 나라가 흔들리고 있으나 일본에서는 고베 대지진으로 날려보낸 5조엔이 일본을 되살리고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그러면 앞으로 일본경제는 어떤 모습일까. 일본은 지난 1·2차 오일쇼크 이래 모든 기계설비를 에너지 절약형, 초절전형으로 바꾸었다. 이같은 에너지절약으로 20%의 에너지 절약이 가능해졌으며 산유국의 기세도 꺾는 계기가 됐다. 일본 제품 특유의 「경박단소」형이 초슬림화하면서 세계시장에서 선풍을 일으키고 있는 것도 바로 절약형 탓이다. 여기에 지난 90년부터 시작된 불황의 극복을 위해 노조는 목소리를 낮추고 있다. 금년에는 대기업 노조간에 「춘투」를 하지 않기로 묵계가 이루어졌으며 상징적인 의미에서 1천엔(7천5백원) 인상을 요구하는 노조도 있다. 불황이 심각했던 지난 92·93년에는 노조 스스로 임금을 동결하겠다고 앞장 섰다. 경기불황과는 직접적인 연관이 없지만 과격노조로 악명 높은 「총평」이 지난 89년 가입률 저하와 일반적인 노조연성화에 따라 40년 역사를 스스로 마감, 자진 해산한 것이 일본 노조의 성격을 크게 변모시킨 것이다. 지금은 중도·온건 노선의 「연합」이 일본 노조를 주도해 나가고 있다. 일본 노조의 변화는 「회사가 있어야 사원이 있다」는 평범한 논리에서 비롯된다. 이같은 분위기속에서 정부는 정부대로, 기업은 기업대로 국경없는 경제전쟁에 대비를 서두르고 있다. 일본정부는 일본경제의 발목을 붙잡고 있는 각종 행정규제를 완화하기로 하고 지금 7백여건의 규제 완화작업에 들어갔다. 또 20여개인 성·청을 10여개로 줄이기로 하고 정부기구 군살빼기에 들어갔다. 가장 주목의 대상은 대장성의 대폭 축소이다. 기업들은 이미 구조개편에 들어간지 오래며 특히 금융기관들간에는 빅뱅이 시작됐다. 다이요 고베(태양신호)은행과 미쓰이(삼정)은행이 합쳐 사쿠라(앵)은행으로 다시 태어났으며 동경은행과 미쓰비시(삼릉)은행이 통합, 동경미쓰비시은행이 됐다. 지방은행들도 거대한 외국자본에 대항하기 위해 빅뱅에 들어갔다. 이와관련, 릿교(립교)대 경제학부 사이토 세이이치로(제등정일랑 )교수는 일본은 지난 95년 가을부터 「제로성장」의 저점에서 벗어났다고 지적한다. 그는 일본이 현 시점에서 더 발전을 이루기 위해서는 현재 진행중인 행정개혁이 성공을 거두어야 한다고 말한다. 관료지배 사회인 일본의 사회구조도 민간 주도형으로 전환시켜야 한다고 제안한다. 또 해외생산·신기술개발 등 코스트 구조나 생산체제의 전면적인 개편이 보다 활발하게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지난 90년대까지 일본의 기업들은 적극적으로 산업구조조정에 힘써 왔지만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다. 사이토 교수는 이같은 전제가 충족될 경우 일본 경제는 오는 2001년까지 쾌속 항진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고베(신호)=정훈 논설위원>

관련기사



정훈 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