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자본시장의 돌파구 헤지펀드] <1부> 위기를 기회로 ②자본시장의 꽃이 피면…

'분산투자' 새 수단 수요 많아 도입 3~4년후 50조 시장 예상<br>최근 해외 헤지펀드 판매하자 고수익에 목마른 300억 몰려<br>랩등 기존 시장 빼앗기 안되게 기관 중심 시장형성 유도 필요



절대수익 추구하는 기관 수요 몰려 3~4년 뒤 50조원 새 시장 '활짝' 개인투자자 A(58)씨는 지난해 8월 한 대형 증권사의 자문형 랩 상품에 5억원을 투자했다가 이달 11일 전액 회수해 은행 정기예금에 넣었다. 1년 만기 정기예금 이자율이 3~4%로 최근 물가상승률에도 크게 못 미치지만 최근 증시 변동성이 심해지면서 원금까지 까먹을 수 있다는 불안감이 엄습했기 때문이다. A씨는 아무리 궁리를 해봐도 투자할 만한 곳을 찾을 수 없었다. 평소 안면이 있는 증권사나 은행 프라이빗뱅커(PB)들에게 물어봐도 "투자할 만한 상품이 없다"는 소리만 들어야 했다. A씨는 "모두들 투자하지 말라고 하니 은행에 넣어두는 것 외에 대안이 없다"며 "은행 이자에 단 1~2%포인트만 더 받을 수 있는 곳이 있어도 투자할 수 있을 텐데…"라고 답답해했다. 최근 투자자들이 큰 고민에 싸였다. 글로벌 경기둔화 우려로 금융투자를 통해 수익을 낼 만한 창구가 모두 막혀버렸기 때문이다. 주식이나 펀드에 투자하자니 시장 변동성이 워낙 커 언제 손실을 볼지 모르고 은행에 넣어놓자니 물가상승률을 감안하면 오히려 원금을 까먹는 결과만 나타나기 때문이다. 증권업계의 한 관계자는 "지금과 같은 불황기가 닥칠 때마다 투자할 수 있는 상품의 폭이 좁다는 사실을 절감한다"며 "수익을 안정적으로 낼 수 있는 자산수단이 국내에도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 같은 투자자들의 고민을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최근 한 국내 대형 증권사는 연기금과 비은행 금융기관을 대상으로 해외 단독(싱글) 헤지펀드 상품을 들여와 팔았다. 여기에 몰린 자금은 200억~300억원 이상. 증시가 미국과 유럽의 재정위기로 크게 출렁이자 헤지펀드의 분산투자를 통한 위험회피와 절대수익률, 그리고 시장방어력 등에 매력을 느낀 자금이 대거 몰려든 것이다. 이처럼 금융투자 업계에서는 투자대안의 부재를 극복할 수 있는 해법으로 절대수익률을 추구하는 헤지펀드를 꼽는다. 이 증권사의 헤지펀드 담당자는 "8월 들어 시장위기를 겪으면서 절대수익과 시장방어력을 갖춘 헤지펀드로 기관 자금이 눈길을 돌리고 있다"며 "지금은 헤지펀드를 기본으로 포트폴리오를 다각화해야 하는 시기라는 점이 증명된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증시가 급락세를 보인 이달 재간접 헤지펀드의 성적표를 보면 헤지펀드의 필요성을 더욱 절실히 느낄 수 있다. 이달 들어 지난 24일까지 코스피지수가 378포인트(17.74%)나 하락한 가운데서도 삼성증권의 북극성알파 1호는 2% 이상의 수익률을 올렸고 대우증권의 KDB골디락스1호(1.73%), 동양종금증권의 한국투자멀티CTA(1.29%)도 플러스 수익률을 보였다. 특히 이달 들어 주요 재간접 헤지펀드 가운데 코스피나 미국 S&P500지수의 수익률을 밑도는 상품은 단 하나도 없었다. 전문가들은 5월 글로벌 헤지펀드 투자를 선언한 국민연금을 비롯해 안정적인 수익창출과 새로운 분산투자 수단을 요구하는 기관투자가를 중심으로 초기 헤지펀드시장이 형성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 경우 그동안 잠재됐던 대안투자 수요가 몰리며 국내 금융투자시장에 일대 변혁을 가져올 수도 있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김재칠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그동안 기관들이 편입자산 종류에 한계를 느꼈는데 헤지펀드가 도입될 경우 한층 여유를 갖게 될 것"이라며 "초기부터 폭발적으로 시장이 커지지는 못하겠지만 기관의 수요는 어느 정도 나올 것"이라고 분석했다. 전문가들은 헤지펀드가 국내에서 전면 도입될 경우 초기 30개 상품에 6조원 내외의 시장이 형성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하지만 국내 정착에 성공한다면 기존 펀드시장의 10% 규모까지 충분히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22일 현재 국내 공ㆍ사모펀드의 총자산 규모가 301조688억원이고 앞으로 자본시장 규모가 더 커질 것까지 감안하면 대체로 40조~50조원의 시장이 추가로 조성될 것이라는 추론이다. 서보익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헤지펀드 도입 초기에 기관과 고액자산가의 대체투자 수단으로 부각되면 투자일임ㆍ사모펀드ㆍ랩어카운트 등 기존 금융상품에서 10%가량이 옮겨와 42조원 정도의 시장을 형성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남기천 대우증권 고유자산운용본부장도 "3~4년 뒤에는 최대 50조원의 시장이 창출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다만 헤지펀드가 기존 금융투자시장을 잠식하기보다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는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무엇보다 기존 공모펀드나 랩어카운트 등 다른 상품보다 안정적으로 수익을 낼 수 있다는 점을 확실하게 투자자들에게 보여줘야 한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자본시장 업계 관계자는 "헤지펀드가 기존 공모펀드와 랩 등의 시장을 잠식한다면 그것은 발전이 아닌 자금 재분배에 불과하다"며 "기관투자가 위주의 시장을 열어 기존 상품과는 차별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헤지펀드가 개인이 아닌 기관투자가 중심의 시장이 돼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5억원이라는 진입장벽을 고려할 때 헤지펀드가 기관투자가에는 분산투자 수단이 될 수 있지만 개인투자자에게는 부담스럽고 위험한 투자 수단이 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우리투자증권에 따르면 2000년까지만 해도 글로벌 헤지펀드 전체의 54%에 달했던 개인 비중이 금융위기인 2008년을 거친 뒤 지난해에는 24%까지 급감했다. 반면 재간접펀드, 연금펀드, 기업, 재단ㆍ기금 등 기관투자가 비중은 46%에서 76%로 수직 상승했다. 김진형 삼성자산운용 마케팅전략실장은 "대체상품에만 5억원 이상을 투자할 개인도 많지 않은데다 투자에 도전하기에는 상품의 투명성도 일반 펀드보다 떨어지고 사람들이 헤지펀드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는 데도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라며 "도입 초기일수록 연기금 등 기관투자가 위주로 시장이 형성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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