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여름 강원도에서 열린 강연회에 초청을 받아 대관령 근방에 갔을 때다. 저녁 시간인데다 안개가 너무나 자욱해서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상황이었다.하는 수 없이 조심조심 가고 있는데 그때 마침 앞서 가던 차량이 있었다. 그 차를 따라가다보니 안개를 헤쳐나가는데 큰 도움을 받았다. 만약 혼자서만 그 길을 달리고 있었다면 무척 고생을 했을 것이다.
앞 차의 경우를 뒷 차가 본보기로 삼는다는 뜻의 한자성어로 「전거지복 후거지계(煎車之覆 後車之戒)」라는 말이 있다. 미찬가지로 안개가 덮인 낯선 길이라 할 수 있는 IMF 경제위기 상황에서 우리에게 앞 차의 예가 되는 것은 무엇일까.
언뜻 생각해보면 과거 IMF의 원조를 받았던 다른 나라들일 것 같지만 사실 가장 좋은 예는 바로 우리 자신이다. 외환위기를 극복하고 경제가 회복세에 접어들고 있는 지금, 과거의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 사회 일각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과거 거품경제 하에서 저지른 잘못을 또다시 되풀이하고 있는 듯하다. 70만원을 호가하는 수입 구두가 날개돋친 듯 팔리고 있는가 하면, 수천만원에 이르는 수입가구도 다시 인기를 끌고 있다. 국부를 창출하기 위해 힘을 모아야할 이때에 과거 밤을 지새우며 흥청망청 거렸던 거품 속으로 되돌아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든다.
물론 내수진작을 위해 소비가 살아나야 한다. 그러나 소비의 지나친 양극화가 야기할 위화감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덧붙여 일부 계층의 소비행태가 값비싼 외제상품의 소비에 집중된다면 국내 제조업의 가동률 증대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로마가 세계적 국가로 발돋움 할 수 있었던 원동력의 하나가 「노블리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라는 덕목이었으며, 또 로마가 분열되어 쇠락의 길을 걷게 된 것도 이 덕목의 해이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되짚어 볼 일이다.
경제위기 극복은 국민 모두의 노력과 단결에 의해 가능하다. 경제지표가 회복되고 있다고 하지만 실업률은 공식적인 통계가 도입된 후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으며, 서민들이 느끼는 체감경기 또한 나아진 것이 없다는 얘기도 들린다. 이러한 때에 또다시 과거의 잘못을 되풀이 한다면 그동안 기울인 노력이 모두 헛수고가 될 것이다.
우리가 제대로 된 방향으로 달리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성급함과 과시욕으로 안개가 자욱한 도로를 무턱대고 질주하고 있는 것인지 곰곰이 생각해 볼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