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동십자각] 참교육과 헛교육

정문재 국제부 차장 timothy@sed.co.kr

매년 이맘때면 한국뿐 아니라 미국의 고3 수험생들도 엄청난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하지만 스트레스의 질에서 큰 차이가 난다. 바로 에세이 준비 때문이다. 미국의 대학은 수학능력시험(SAT)성적과 함께 에세이를 중요한 입시전형의 자료로 삼는다. 대학은 이런 입시 관련 자료를 늦어도 12월까지 접수받은 후 내년 2~3월까지 학생 선발을 마무리한다. 에세이는 뛰어난 독창성과 논리력을 요구한다. 커닝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모범 에세이’ 베끼기로는 합격을 기대할 수 없다. 자신의 경험ㆍ세계관 등을 설득력 있게 녹여내야 한다. 에세이 분량이 보통 500단어 이내로 제한되기 때문에 간결한 문장으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해야 한다. 그래서 미국의 고3 수험생이라면 누구나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짜낸 후 간결하고 매끄러운 에세이를 작성하느라 며칠 밤을 뜬눈으로 지새운다. 미국은 대학에서도 리포트를 작성하면서 출처를 명시하지 않은 채 자신의 주장인 양 포장했다가는 즉시 퇴학을 당한다. 이게 바로 참된 교육이다. 입만 떼면 ‘참교육’을 외쳤지만 한국의 교육은 ‘헛교육’이라는 게 조직적인 입시부정을 통해 여실히 증명됐다. 교육의 질이 갈수록 떨어진다는 지적은 그래도 참을 만했다. 하지만 이제는 교육의 당위성마저도 의문시되는 상황이다. 인생역전을 꿈꾸는 조직적인 커닝과 대리시험이 군사작전처럼 펼쳐지는 상황에서 백년대계(百年大計)를 입에 담는 것 자체가 창피스러울 뿐이다. 결국 우리의 교육은 ‘보다 우수한 인적자원을 길러 낸다’는 효율성도, ‘누구나 공평한 교육기회를 누린다’는 공정성도 상실한 셈이다. 교육의 요체는 못난 사람을 훌륭한 사람으로 키우는 데 있다. 정부가 대학입시를 비롯해 교육과 관련된 모든 의사결정을 독점하는 상황에서는 이런 교육목표를 달성하기 어렵다. 사교육을 억제하려면 현행 교육제도를 고수해야 한다고 강변하지만 설득력은 떨어진다. 수능시험이 바뀔 때마다 강남 8학군 학생들이 고전하지만 1년 후에는 경쟁력 있는(?) 학원의 지원에 힘입어 수능 고득점자를 양산한다는 게 정설이다. 오히려 현행 입시제도 아래에서는 엄청난 사교육비를 감당할 수 없는 저소득층의 자녀가 희생자로 전락한다. 참교육의 출발점은 자율권과 분권확대를 통한 공교육 활성화에서 시작돼야 한다. 정부가 모든 것을 틀어쥐는 교육제도 아래에서는 백년대계(百年大計)는 백년하청(百年河淸)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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