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역대 올림픽에서 따낸 메달은 무려 215개. 지난해 베이징올림픽에서는 31개의 메달을 따내며 종합 7위에 올랐다. 체육 인프라가 취약한 한국이 올림픽에서 세계 10위권의 성적을 꾸준히 낸 데는 선수들의 노력과 더불어 구심체인 스포츠 단체의 역할이 컸다. 스포츠 단체들은 지난 수십년 동안 가능성 있는 선수들을 발굴하고 육성해 엘리트 체육 발전의 토대를 마련했다. 하지만 조직체가 커지고 위상이 올라가면서 관행적으로 운영됐던 행정 업무가 스포츠 단체는 물론 선수들의 경기력 향상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지난 6월 대한체육회와 산하 55개 경기단체에 대한 정기종합감사를 실시해 최근 발표한 감사결과 심각한 문제점이 드러났다. 구시대적 회계관행으로 부정부패가 만연하고 취약한 재정구조는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등 제도 개선이 시급한 상황이다. 이에 따라 서울경제신문은 체육단체들의 회계 및 행정과 관련한 문제점들을 살펴보고 그 개선 방안을 모색하기로 했다. 대한하키협회는 6월 하계훈련비 명목으로 정부로부터 보조금 6,100만여원을 지급 받았다. 하지만 하키협회에 입금된 보조금은 어찌된 일인지 카드회사로 모조리 빠져나갔다. 카드에 찍힌 명목은 1월 실시했던 동계훈련비와 체납금. 현재 3억여원의 자체 채무를 안고 있는 하키협회는 미납된 동계훈련비를 하계훈련비로 메우고 하계훈련비는 내년에 받을 동계훈련비로 메워 넣는 악순환을 반복하고 있다. 대한야구협회의 한 간부는 대학야구선수권대회 등 30여개 대회의 개최비용 등으로 9,400만원을 개인 계좌에 입금하고 사용했다. 하지만 협회 공금에 대한 영수증 처리는 거의 없었다. 이처럼 스포츠 단체의 공금 유용은 심각한 수준이다. 보조금을 목적 외로 유용하는가 하면 지원금을 식당 등 업소에 미리 카드로 결제하고 현금을 돌려받는 이른바 '카드깡' 등 각종 수법이 난무한다. ◇회계 부정 막을 수단 없어=대한체육회 산하 55개 경기단체의 지난해 예산은 2,075억원. 이 가운데 23%인 475억원이 정부 지원금이고 10%가량인 189억원이 개인 후원금이다. 전체 예산의 30% 이상이 지원금이지만 경기단체는 사실상 감시를 받지 않고 있다. 경기단체 내에 체계화된 회계조직이 없는데다 감독기관이 제 역할을 못하면서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사적으로 유용할 수 있는 상황이다. 대한축구협회를 제외한 대다수 단체의 사무국 직원은 5~6명뿐이고 회계관리 직원은 공식적으로 지정돼 있지 않은 상황이다. 자체수입과 보조금 등 모든 재정의 예ㆍ결산을 대한체육회에 보고해야 하지만 형식적인 절차일 뿐 영수증 증빙, 실제 집행 내역에 대한 조사는 거의 없다. ◇공금 사용에 대한 규정 필요=대한체육회는 각종 회계비리를 근절하기 위해 오는 10월 중순까지 경기단체 선진화 계획을 수립해 11월께 시행할 예정이다. 산하단체에 통일된 회계 프로그램을 사용하도록 강제하고 복식회계로 바꿔 사용처를 확실히 관리하겠다는 게 골자다. 하지만 기부금 등 공금사용에 대해서는 여전히 건전성과 투명성을 확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모 단체는 지난 3년간 유흥주점 등에서 306차례에 걸쳐 2억3,000만여원을 쓰는 등 협회비로 '술잔치'를 벌였지만 정부지원금이 아니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대한체육회는 이와 관련, "과도한 홍보비ㆍ유흥비에 대해서는 개별 단체마다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가이드라인을 만들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술값으로 흥청망청 쓸 수 있을 정도라면 정부지원금을 굳이 투입할 이유가 없다는 게 체육계 안팎의 목소리다. ◇경기력 향상비 지원기준 바꿔야=정부는 지난해 115억원을 경기력향상비로 집행했다. 하지만 선수들의 국제경쟁력을 키우기 위한 용도인 경기력 향상비가 협회의 도덕적 해이를 부추기고 있는 실정이다. 정부는 올림픽 메달 수에 근거해 금메달 종목인 유도ㆍ레슬링 등 15개 종목은 2억4,000만원, 올림픽 종목이지만 메달을 못 딴 카누 등 10개 종목은 1억9,000만원 등 차별 배정돼 일괄적으로 나눠준다. 협회는 지난 10여년 동안 선수들의 훈련, 국제대회 유치 등에 비용을 집행하고 남으면 자체기금으로 이월했지만 2008년부터 남은 돈을 국고로 반납하도록 규정이 바뀌었다. 하지만 지난해 12월 무려 13개 단체가 급조한 사업변경신청서를 제출해 경기력 향상비 잔액을 자체 운영비로 소진했다. 문화부는 이와 관련, 지원기준제도를 개선할 것을 요청했지만 대한체육회는 아직 구체적으로 고려하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