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자는 여유로웠고 ‘지존’은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미녀새’ 옐레나 이신바예바(29ㆍ러시아)가 4년 만의 정상 탈환에 실패했다. 이신바예바는 30일 대구스타디움에서 벌어진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 여자 장대높이뛰기 결선에서 4m80을 연거푸 못 넘었다. 최종 성적은 4m65로 6위. 자신이 갖고 있는 세계기록인 5m06에 모자라도 한참 모자랐다.
남자 100m 세계기록(9초58) 보유자 우사인 볼트(자메이카)의 부정출발 실격에 이어 이신바예바마저 미끄러지면서 이번 대회는 슈퍼스타의 무덤으로 남게 됐다. 지난 29일에는 남자 110m 허들의 ‘황색 탄환’ 류샹(중국)이 경쟁자의 반칙 탓에 눈앞의 금메달을 놓쳤었다.
4m65를 가뿐하게 넘어 출발이 좋았던 이신바예바는 그러나 4m75를 1차 시기에서 실패하면서 마음이 조급해졌다. 경쟁자들이 잇따라 4m75를 넘자 불안감이 엄습했다. 이후 이신바예바는 4m80으로 높이를 조정해 2차 시기에 도전했지만 바에 허벅지가 걸렸다. 이어 맞은 마지막 기회. 혼자만의 ‘주문’을 외며 마음을 가다듬어 봤지만 긴장한 표정을 감출 수는 없었다. 결국 바를 넘기는커녕 미치지도 못하고 눈앞에서 떨어져 메달권에서 멀어졌다.
세계기록만 27차례를 작성한 이신바예바는 2008년까지만 하더라도 적수가 없어 보였다. 2003년 4m82로 처음 세계기록을 쓰고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 4m91로 금메달을 따면서 ‘여제’로서의 장기 집권에 돌입했다. 2005ㆍ2007년 세계선수권은 물론이고 2008년 베이징 올림픽까지 2개의 메이저대회를 2연패했다. 그러나 2009년 베를린 세계선수권에서 ‘복병’ 아나 로고프스카(폴란드)에 가로막혀 ‘노 메달’에 그쳤고 직후 5m06으로 누구도 넘볼 수 없는 금자탑을 세운 뒤로 이렇다 할 기록을 내지 못했다. 지난해 3월에는 4m75도 넘지 못했고 휴식 뒤 11개월 만에 돌아왔지만 4m76이 올 시즌 개인 최고기록이었다.
이신바예바를 외면한 우승은 4m85를 넘은 파비아나 무레르(30ㆍ브라질)의 차지였다. 브라질의 세계선수권 사상 첫 금메달. 무레르는 3년 전 베이징 올림픽에서 조직위원회의 관리 소홀로 장대를 잃어버려 메달권 진입에 실패했던 ‘불운의 아이콘’이었다.
한편 이신바예바의 ‘추락’으로 경기 안내 책자의 표지를 장식한 선수들은 어김없이 탈락한다는 ‘브로셔 징크스’도 계속됐다. 조직위가 판매하는 ‘데일리 프로그램’의 표지 모델이 당일 경기에서 줄줄이 탈락의 고배를 든 것이다. 1일차 모델인 남자 장대높이뛰기의 최강자 스티븐 후커(호주)는 예선 탈락으로 첫번째 이변의 희생양이 됐다. 이어 2일차 표지에 사진이 실린 볼트와 3일차 모델인 남자 110m 허들의 다이론 로블레스(쿠바) 역시 각각 부정 출발과 진로 방해로 나란히 실격 처리됐다. 이어 이날 이신바예바까지 저조한 성적으로 메달권 진입에 실패하면서 안내 책자가 생각지도 않게 주목 받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