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송현 컬럼] 美· EU FTA 늦추면 비용만 커진다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는 최근 국내에서의 강연과 신문기고에서 한국이 미국, 유럽연합(EU)과 지금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하면 "앞으로 우리가 전정한 선진국이 되는 데 필요한 첨단산업들을 개발할 길이 막히기 때문에 장기적으로는 우리나라 발전에 좋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소득수준이 선진국들의 80~90% 수준까지 올라갔을 때 체결하면 도움이 된다고 했다. 지난 2009년 미국의 일인당 소득이 4만6,000달러이니까 80%인 3만6,000달러가 될 때까지 기다리려면 빨라도 6~7년 후가 되지 않을까 하는 짐작이 든다. 장 교수가 이러한 주장을 30년 전에 했다면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공감했을 것이다. 다행히도 우리나라는 자동차와 텔레비전의 수입을 꼭꼭 막고 국민들이 도요타 대신 포니를, RCA 텔레비전 대신 금성TV를 사용하도록 강제한 결과 오늘날 우리의 토착브랜드를 자랑스럽게 부착한 자동차와 가전제품이 세계를 누빌 수 있게 되었다. 이점에 있어서는 필자는 장 교수와 견해가 같다. 지난해 우리나라는 세계 9위의 무역대국이 됐다. 수출은 세계 7위다. 전체적으로 412억달러의 무역흑자를 냈고 미국과는 94억달러, EU와는 148억달러의 흑자를 기록했다. 국내총생산(GDP) 규모는 세계 13위로 추정된다. 아울러 포춘 500대기업에 이름을 올린 국내기업은 10개이고 히든 챔피언에 속하는 중견기업도 가끔 있다. 이런 한국이 유치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선진국과의 FTA를 유보하자는 주장에 대해서는 좀 더 면밀하게 검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한국이 미국ㆍEU와 무역적자를 많이 내고 있는 품목들을 보면 정밀기계와 정밀화학에 속하는 자본재 및 부품ㆍ소재가 많다. 이들의 수입을 제한하면 이들을 투입해서 최종재를 만들어 수출하는 부문이 피해를 입게 되고 그 피해는 수출과 고용의 타격으로 나타난다. 과거에 자동차나 가전제품을 수입 금지했을 때 소비자들만 피해를 떠안은 경우에 비해 산업보호의 비용이 훨씬 커지는 것이다. 앞으로의 먹을거리 산업은 기술혁신의 속도가 매우 빠르고 세계적인 경쟁구도가 순간적으로 바뀌는 속성이 있다. 우리가 문을 닫고 산업을 키우는 동안 바깥의 경쟁자들은 오히려 멀리 달아날 위험이 있는 것이다. 과거에는 제너럴모터스(GM)와 도요타를 바라보고 쫓아가면 됐으나 앞으로는 풍력발전기의 선두인 베스타스사를 쫓아가는 동안 중국 기업이 우리 앞에 서 있는 것을 목격하게 되는 상황이 흔할 것이다. 오히려 문을 열어 선도기업과 협력하는 것이 유리할 수도 있다. 과거 자동차나 텔레비전은 좁은 국내시장을 무대로 해서 10여년 동안 경쟁력을 기른 후 수출시장에 뛰어들었고 그 전략이 유효했다. 경쟁판도가 하루가 멀다 하고 바뀌는 오늘날에는 처음부터 세계시장을 겨냥하는 판매 전략이 아니면 성공하기 힘들 것이다. 반도체가 그 단적인 예이다. 우리나라는 세계무역기구(WTO)에서 농업과 환경 부문에서만 개도국 지위를 유지한다고 선언하고 나머지 부문에서는 개도국 지위를 스스로 포기했다. 그리고 1988년 국제통화기금(IMF) 14조 국가에서 8조국가로 이행했는데 그 의미는 원칙적으로 관세 이외의 수입제한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한국이 미국ㆍEU와 FTA를 하지 않더라도 현재의 관세를 유지하는 것 이외에는 유치산업보호를 위해서 할 수 있는 무역수단이 달리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높아 봐야 8% 정도인 관세를 계속 부과한다고 해서 그 관세를 없애면 생겨나지 않을 첨단산업이 실제로 생겨날 가능성은 별로 크지 않을 것 같다. 첨단산업을 키우는 수단은 더 이상 국내 시장보호가 아닌 기술과 인력ㆍ마케팅 등의 경쟁력요소를 강화하는 게 될 것이다. 첨단산업을 키우기 위해 미국ㆍEU와의 FTA를 연기하더라도 그 효과는 매우 불확실하다. 반면 그 비용은 분명하다. 그렇기 때문에 당사국 의회의 비준만을 남겨두고 있는 시점에서 지금까지의 협상결과를 원점으로 돌리는 것은 현실성이 떨어진다고 보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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