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통신업체 공생시대] IT 산업을 위한 제언

임주환 한국전자통신연구원장

우리나라는 90년대 중반 이후 본격적인 정보화 추진으로 세계 최고 수준의 정보통신 인프라를 보유한 IT 강국으로 부상했다. 새로운 IT 장비와 서비스는 먼저 한국에서 상용화를 해봐야 성공여부를 알 수 있다는 정설이 있듯이 이미 ITU 및 OECD에서 한국을 IT 선진국으로 분류하고 있다. 이 같은 우리나라의 비약적인 통신 산업 발전은 세계의 관심거리이기도 하다. 특히 선진국에 갈 때마다 우리나라보다 낮은 수준의 통신 인프라를 확인할 때면 우리의 통신 산업과 환경에 대해 한없는 자부심을 갖게 된다. 그 동안 국내 통신 산업은 정부와 연구소, 기업의 유기적인 협력아래 빠른 발전을 거듭해 왔다. 이 같은 발전은 세계적인 수준의 초고속통신망, 무선통신망의 인프라 덕분에 실현된 것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어느 산업이나 마찬가지겠지만 통신 산업을 지금의 세계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데에는 연구개발에 참여한 연구원들의 노력과 통신장비업체의 밤낮 없는 연구개발, 그리고 서비스제공 사업자의 장비구매 3박자가 잘 맞아 떨어진 셈이다. 그러나 이같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유선분야의 장비 업체들은 국내 시장에서 외국산 장비업체들과 힘겨운 경쟁을 하고 있으며 아직까지도 수출 경쟁력을 위한 기반을 갖추지 못한 실정이다. 특히 1998년 21%에 불과하던 외국산 장비들의 시장 점유율이 2002년에는 55%까지 늘어나 외국산에 급속하게 밀리고 있는 것이 국내 통신장비 시장의 현 실정이다.  이 같은 원인은 2001년 시작된 세계적 IT 산업 불황 여파와 외국산 장비의 저가 공세로 많은 기업들이 도산하거나 사업을 포기하면서 국내 네트워크 주요 장비시장을 외국산 제품 공급자들이 주도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통신장비 개발에 대한 정부의 지원은 이미 시장경쟁 원리를 통해 전적으로 기업의 몫으로 돌려졌다. 어렵사리 개발한 장비는 정부, 통신사업자들의 최저가입찰 정책으로 인해 피해를 보고 있어 최근 극심한 경영난에 시달리는 업체들이 늘고 있다는 보도를 접할 때마다 안타깝기 그지없다.  특히 벤처기업이나 중소기업에게 최저가입찰은 넘기 힘든 큰 장애물이 아닐 수 없다. 장비개발 업체들에게 최저가입찰을 요구함으로써 결국 개발을 포기하거나 문을 닫고 마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장비 개발 노력보다는 손 쉽게 외산장비를 들여오는 경우가 늘고 있고, 아예 거대자본을 바탕으로 가격경쟁력을 앞세운 외국계 대기업들에게 고스란히 시장을 내주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최저가입찰 정책은 국내 업체들의 외국 수출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외국 고객들도 국내시장에서 통용됐던 가격에 제품구매를 원하게 되면서 적자를 감수하면서 수출하거나 아니면 아예 수출을 포기하는 등의 심각한 후유증이 나타나고 있다. 여기에 통신사업자들의 사업계획이 급변함에 따라 장비개발 업체들의 혼란이 가중되는 측면도 있다. 통신사업자들의 사업계획만 믿고 어렵사리 개발한 장비들이 하루아침에 용도 폐기되고 다른 장비들로 교체되어 업체에 심각한 타격을 주고 있다는 보도들을 볼 때 우리의 미래가 걱정되기도 한다. 이의 해결을 위해 통신사업자, 제조업체, 연구원 관계자들로 구성된 협의체를 만들어 미팅을 정례화할 필요가 있다. 또 최저가 입찰제도의 근본적인 개선도 필요하다. 2001년 일본 모 통신회사의 경우 ADSL 150만 회선 공개입찰시 기술이 가격면에서 특별한 이점이 없는 경우 기존업체와 거래를 유지한다는 방침을 공표하고 입찰을 실시했다. 그 결과 세계적인 기술력을 확보한 국내 업체들이 낮은 가격으로 참여했음에도 일본 업체가 공급권을 유지하게 되었다. 이같은 일본의 사례는 우리의 통신 산업 현실과 비교할 때 시사하는 바가 크다. IT 강국인 우리나라의 미래 산업에 있어 통신 산업이 가지는 의미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될 만큼 지대하다. 특히 우리나라는 현재의 통신인프라에 힘입어 전 세계가 주시하는 시험무대로 떠오른 만큼 어느 나라보다도 유리한 위치에 있다. 때문에 연구개발 환경만 개선된다면 세계적인 통신 산업 리더로 부상할 가능성도 충분하다.  어렵게 이룩한 국내 통신 산업의 발전이 몇 가지 제도의 미흡으로 후퇴해 버린다면 국가적인 손실일 뿐 아니라 우리의 미래도 암담할 수밖에 없다. 정부와 통신사업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상생을 위한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아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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