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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침에 눈을 뜨는 게 이렇게 행복할 수 없어요. 이 나이에 직장생활을 하며 돈을 벌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는 것만해도 감사하지만 사회 일원으로서 나도 뭔가 할 수 있다는 뿌듯함 때문에 사는 게 신이 납니다." 장경자(67ㆍ울산시 남구)씨는 요즘 정말 신바람 나게 살고 있다. 일주일에 3일, 한번에 4~5시간씩 일할 수 있는 직장이 있기 때문이다. 장씨는 울산중구시니어클럽이 운영 중인 희망도시락사업단에 소속돼 있다. 행사용 국밥이나 도시락을 만드는 게 그의 일이다. 한 달 수입은 25만~30만원 선으로 비록 큰 벌이는 못되지만 올해로 4년째 같은 일을 하고 있다. 장씨의 바람은 건강을 유지하는 한 언제까지 일하고 싶다는 것. 돈이 문제가 아니라 삶의 의미를 찾아 주는 일자리의 고마움 때문이라는 게 이유이다. 장씨가 소속된 희망도시락사업단은 정부 지원을 받지 않는 일자리다. 자체 수익을 발생시켜 남은 이윤 가운데 장씨의 급여도 포함된다. 수익이 줄면 장씨와 같은 노인들의 급여도 줄어드는 것은 당연하다. 그래서 장씨를 비롯한 노인들은 사업체 자체가 '내 것'이라는 각오로 열심이다. 보람이 큰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노년의 힘은 무서웠다. 장씨가 소속된 희망도시락사업단을 비롯해 울산 중구시니어클럽 소속 희망김치사업단, 전통음식사업단 등 4개 사업단은 정부 지원으로부터 홀로서기를 하면서 당당하게 사업체로 경쟁에 뛰어들었고 세탁배달사업단 등 2개 사업도 홀로서기를 준비 중이다. 울산에도 많은 노인 일자리가 창출되고 있지만 정부 지원 없이 민간사업형 일자리로 운영되는 곳은 울산 중구시니어클럽의 4개 사업단 뿐이다. 이들 사업단이 주목 받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울산중구시니어클럽 손경숙 관장은 "정부와 지자체가 노인 일자리사업을 확대해가면서 노인들이 일할 기회를 더 많이 갖게 된 게 사실이지만 언제까지 정부에 의존해 노인들이 일자리를 찾을 수만은 없다"며 "노인들에게 일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인 사회가 됐기 때문에 초기 정착 시기에는 정부 지원을 받되 점차 자체 사업으로 독립하는 것이 활성화돼야 바람직한 방향일 것"이라고 말했다. 』 "일 안했으면 무료하게 시간 보내고
'할머니' 소리만 듣고 살았을텐데…
사회 보탬되고 용돈도 벌어 행복해" 울산 지역에 일을 하기 때문에 행복한 노인들이 늘고 있다. 정부, 지자체 등이 노인 일자리사업을 추진하면서 일할 곳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특히 울산중구시니어클럽의 활동이 주목을 받고 있다. 지자체와 여느 복지단체가 정부로부터 지원 받아 다양한 노인 일자리사업을 펼치고 있지만 이곳의 사업은 울산지역에서 유일하게 정부 지원 없이 순수 사업형으로 꾸려지는 노인 일자리가 있기 때문이다. 정부 주도의 노인 일자리가 주 몇 시간 일하고 20여만 원의 급여를 받는 형식이라면 사업형 일자리는 노인들이 일한 만큼 수익을 분배 받는 형식이다. 전국에 있는 60여 곳의 시니어클럽이 정부 지원에서 독립한 시장진입형사업 일자리 확대를 위해 애쓰고 있지만 성공한 업체는 그리 많지 않다. 그러나 울산시니어클럽은 노인들과 담당자들의 노력으로 4년 연속 우수기관으로 선정되는가 하면 지난해에는 자체 판매하고 있는 ‘아삭김치’가 관련 분야 생산품 가운데 가장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곳에서 일하는 노인들에게서는 특별한 것이 있다. 주어진 일을 하고 임금을 받는 데 그치지 않고 자신이 몸담은 사업이 잘 될수록 다른 노인들을 위한 일자리를 만드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과 자부심이 있었다. 그 희망과 자부심은 다소 무료했던 노인들의 삶을 행복한 삶으로 송두리째 바꿔 놓았다. 일을 하다 보면 소외감 느낄 겨를도 없어요 일하는 그들에게서는 성취감에서 나오는 자신감과 행복감이 물씬 풍긴다. 울산중구시니어클럽 울산제사 ‘얼’에서 3년 동안 일한 최고참 임화순(74)씨는 일주일에 두 차례씩 오전 9시에 출근해서 오후 6시까지 일한다. 임씨의 일은 주문을 받은 제사음식을 만드는 것인데 된장ㆍ고추장ㆍ두부 등도 직접 만들어 소량 판매하고 있다. 임씨의 수익은 한 달 평균 30만원 안팎. 그는 “노년에 일하는 게 이렇게 행복할 수 없다”면서 “많은 금액을 벌지는 못하지만 생활비에 보태고 저축하고 가족들에게 맛있는 것을 사주다 보면 살아가는 데 자신감이 생겼다”고 말했다. 또 신성자(65)씨는 울산중구시니어클럽 희망김치사업단 조장을 맡고 있다. 함께 일하는 다른 노인들은 주 2회 출근하지만 신씨는 조장이기 때문에 월~금요일 오전 9시~오후 6시 닷새를 일한다. 한 달 수입은 적게는 40만~50만원, 많게는 70만원 선이다. 파트타임으로 일하는 다른 노인들에 비해서는 많은 편이다. 신씨는 일하면서 1년 만에 웃음과 삶의 의미를 되찾았다. 그는 “일하지 않았다면 무료하게 시간 보내고 ‘할머니’란 소리만 듣고 살았을 텐데 노년에 직장을 가져 사회에 보탬이 될 수 있어서 얼마나 기쁜 지 모른다”면서 “손자 손녀에게 용돈을 주고 가족들과 함께한 자리에서 외식비를 낼 때 날아갈 것 같다”고 말했다. 세탁배달사업단의 고기석(70)씨는 세탁물을 수거하고 배달하는 게 주 업무이다. 오전 9시~오후 8시, 주 5~6일 일한다. 한 달 수익은 보통 30만원 안팎이고 세탁물이 많을 때는 60만원을 받을 때도 있다. 고씨는 “하루에 적게는 30벌, 많게는 60벌 정도 수거하고 배달하고 있는데 힘든 일이 아니다”면서 “비록 급여를 받고 하는 일이지만 젊은 사람들이 바쁜 요즘, 세탁물을 맡기고 찾아가는 번거로움을 젊은 사람들에 비해 시간 여유가 많은 내가 도와준다 생각하고 일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나이는 많아도 내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돈까지 버니 그게 바로 행복이다”면서 “일해서 버는 돈이야 많지 않지만 일하면서 얻는 보람과 즐거움을 버는 돈에 비할 바가 못 된다. 일을 오래 하기 위해 건강해야겠다”고 덧붙였다. 인생2막, 경쟁사회에 당당하게 내민 도전장 노년의 힘은 서서히 두각을 드러내고 있다. 15명의 노인이 고용된 ‘아삭김치’의 경우 사업을 시작한 지 1년 만인 지난해 1억원의 매출을 올리는 성과를 냈고 전통음식사업단(1억2000만원 상당), 희망도시락사업단(1억2000만원 상당), 희망비누사업단(9700만원 상당)도 적잖은 성과를 얻었다. 물론 사업을 이끌고 있는 울산중구시니어클럽과 고용된 노인들에게 아직은 만족할 만한 성과는 아니다. 그러나 희망을 얻었다. 손경숙 울산중구시니어클럽 관장은 “고령화 사회가 되면서 노인들이 노력의 대가로 용돈이나 생계비를 벌고 보람을 느끼면서 사회 구성원으로 참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부끄럼에 마음은 있어도 엄두를 못 내는 노인들이 적지 않았다”며 “지난 3~4년 동안 교육을 꾸준히 실시한 결과 지금은 돈을 버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노년에 사회 구성원으로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고 보람을 느끼고 있다는 어르신들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울산중구시니어클럽은 앞으로 이 같은 사업형 노인일자리를 늘려갈 계획이다. 현재 정부 지원을 받고 운영되고 있는 사업 가운데 우수 프로그램으로 평가 받은 ‘엄마사랑 도우미 사업단’과 ‘세탁배달 사업단’은 곧 정부의 지원 없는 사업으로 전환을 앞두고 있다. 엄마사랑 도우미 사업단 소속인 주자야(64)씨는 “정부에서 시행하는 노인 일자리사업을 해도 한 달에 20만원 선의 용돈을 벌 수 있지만 사업형 일자리에 속해 있으면 직장이라는 자부심이 더 강해질 수밖에 없다”며 “이곳이 잘 돼야 내 일자리도 보장되는 것이고 잘 되면 수익도 늘고, 다른 노인들에게도 일자리를 제공할 수 있어 더 애착을 가지고 일하게 되니 보람도 훨씬 큰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