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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랜트 기본설계 등 기술력 한계… 공기 지연·손실로 이어져

수주 실적 올리기에만 급급<br>도 넘은 출혈 경쟁 후유증 커

국내 건설사의 해외 사업 전반에 대한 엄밀한 진단과 수익성 개선을 위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GS건설1^4분기어닝쇼크의원인을제공한UAE‘ 루와이스정유플랜트’ 공사현장. /사진제공=GS건설


"최근에는 국내 업체들이 해외에서 플랜트 사업을 수주해도 예전처럼 시공(Construction)에서 수익을 남기기 힘듭니다. 여러 요인이 있지만 설계(Engineering)상의 문제로 공기가 늘어지는 이유가 크죠. 대부분 계약을 값싸게 따오는 상황에서 만약 구매(Procurement)에서도 돈을 벌지 못하면 그 프로젝트에서도 거액의 '수험료'가 나가게 되는 겁니다."

11일 GS건설의 이른바 '루와이스 쇼크'가 일어난 직후 만난 국내 대형 건설사의 해외사업 담당자는 해외사업, 특히 중동 플랜트 시장의 현 주소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GS건설이 아랍에미리트의 루와이스 정유시설 공사에서 발생한 4,050억원의 손실을 포함해 7개 해외건설 현장에서 5,290억원의 손실이 발생, 이를 반영해 지난 1ㆍ4분기 5,359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는 충격적인 발표가 국내 건설업계의 해외사업 전반에 대한 재평가로 이어지고 있다.

'해외수주 1,000억달러 달성을 통한 세계 5위권 건설 강국'이라는 장밋빛 청사진 이면에 어떤 문제가 숨겨져 있는지 서둘러 확인하고 이를 해결할 대안을 더 늦기 전에 찾아야 한다는 지적이다.

◇"공기 지연, 설계 하자가 주 요인"='루와이스 쇼크'의 파장이 큰 것은 이 같은 해외사업에서의 손실이 극소수 특정 현장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라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대형 건설사의 한 관계자는 "GS건설 이외에 다른 대형사의 사우디 발전 플랜트 프로젝트 실행률이 120%를 넘어섰고 또 다른 건설사가 사우디에서 짓고 있는 가스플랜트 실행률도 130%에 달한다는 얘기들이 돌기 시작한 것도 이미 오래 전"이라며 "2009~2010년 사이 수주해 올해 완공하는 프로젝트들을 특히 눈여겨보라"고 귀띔했다. 실행률이란 계약한 공사금액 대비 건설원가를 말한다. 실행률이 130%라면 100억원에 건설 프로젝트를 계약했다고 가정했을 때 실제 비용은 130억원이 투입돼 건설사가 30억원을 손해본다는 얘기다.

왜 이런 납득하기 힘든 손실이 발생할까. 우선 업계 안팎에서는 유독 대형플랜트 사업에서 손실이 발생하는 점을 들며 엔지니어링 역량의 한계를 지목하고 있다. 대형 건설사의 플랜트 담당 엔지니어는 "프로젝트 전체의 윤곽을 잡는 기본설계는 거의 대부분 발주처가 정한 프로젝트매니저가(PMC) 맡고 국내업체는 공정별 설계만 담당하는 형편"이라며 "문제는 아직 엔지니어링의 완성도가 높지 않아 공정별 설계에서도 문제가 발생해 시공을 지연시키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점"이라고 전했다.

고도의 정밀기술이 필요한 플랜트 시공의 경우 설계 상에 하자가 발생할 경우 공사 기간이 대책 없이 늘어지고 이는 건설사 손실의 주요 원인으로 작용한다. 게다가 설계와 조달, 시공까지의 모든 절차를 조율하는 프로젝트 매니지먼트 기능이 없어 그때그때 발생하는 문제에 대한 대처능력이 떨어진다.


이처럼 엔지니어링 경쟁력이 떨어지는 것은 이 분야의 업력이 짧기 때문. 우리나라 건설업계가 해외 플랜트 분야에 진출하기 시작한 것은 1996년, 그리고 단일 프로젝트 수조원 규모의 대형 플랜트를 따내기 시작한 것은 2007년 이후다. 덕분에 2005년 108억달러에 불과했던 해외수주 규모가 지난해 640억달러에 달할 정도로 규모는 비약적으로 늘었지만 이를 수행할 만큼의 기술경쟁력은 아직 확보하지 못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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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요한 자재를 보다 싸고 신속하게 조달하는 구매 경쟁력 역시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지 못하는 분야다. '효율적'인 구매보다는 '값싼'구매에만 열을 올리면서 스스로 경쟁력을 떨어뜨리고 있다는 지적이다. 외국계 밸브업체 사장은 "한국 건설사들은 더 싼 부품만 찾아 정작 중요한 효율적인 구매 네트워크를 구축하지 못한 약점이 있다"고 말했다.

김규철 국토교통부 해외건설지원과장은 "국내 건설사들이 플랜트 설계나 구매 분야의 경쟁력이 다소 떨어진다는 지적을 인정해야 한다"며 "해외건설 부문의 연구개발(R&D) 투자가 필요한 이유도 이 때문"이라고 말했다.

◇도를 넘은 '출혈경쟁'도 문제=이처럼 불안한 엔지니어링 역량에 취약한 구매 네트워크, 또 해외 건설인력을 활용하면서 예전과 같은 생산성을 기대하기 힘든 시공까지, 어느 부문에서건 확실한 수익을 장담하기 힘든 형편임에도 국내 건설사들의 저가 수주는 여전하다. 해외 사업에서의 손실을, 시장확대를 위해 불가피하게 지불해야 하는'수업료'쯤으로 인식하면서 아직도 도를 넘는 출혈 경쟁을 되풀이하고 있다.

지난해 말 사우디의 국영 석유업체 아람코가 발주했던 대형 플랜트 공사인 '자잔 프로젝트' 입찰에 앞서 국내의 한 EPC 업체가 예정가격보다 20% 낮은 금액에 수의계약을 시도하다 오히려 발주처로부터 거부당한 사례는 국내 업체 간의 출혈경쟁이 어느 정도인지 보여주는 우울한 단면이다.

경쟁입찰에서 최저가를 제시한 업체의 가격을 2~3위 업체에 공개해 더 낮은 가격을 제시하도록 하는 '옥션 비딩'이 가능한 것도 국내 업체들의 마구잡이 식 영업에서 비롯된 기형적인 입찰 방식이다. 외국계 EPC 업체 관계자는 "특히 중동 플랜트 시장에서는 한국 EPC 업체가 2개 이상 입찰에 참여한다는 정보가 입수되면 다른 국가 업체들은 입찰 참여를 기피하는 경우가 많다"며 "재미있는 것은 이렇게 한국 업체 간의 경쟁입찰이 되면 발주처는 쾌재를 부른다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박태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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