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단한 근육질의 남자 뒷모습의 사진은 보는이의 심장을 두근거리게 한다. 그런데 상반신만 찍힌 모습 아래로는 부드러운 재질의 레이온이 다리 모습 형태로 늘어뜨려져 있다. 근육질의 운동선수가 위에는 짝 달라붙은 타이즈를 입은 모습이 사진으로, 하체는 이브닝드레스로 장식된 모습이다. 아주 부조화를 이루지만 이채롭다. 사진전시인지아니면 설치미술인지 알수 없는 독특함을 체험할 수 있는 현장이다.
다른 전시장을 가보자. 김중만, 조세현, 구본창작가. 한국 사진계를 이끄는 사람들로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없는 사람들의 작품들이 한 전시관을 꽉 채운다. 잡지책이나 TV연예가 중계등에서 간단한 인터뷰로 만날 수 있었던 이들의 패션 사진이 큰 걸개그림으로 프린트되어 관람객을 맞는다.
풍부한 예산과 스폰서, 예술과 상업주의가 결합한 패션사진은 우리시대가 만들어낸 독특한 이미지이자, 조각같은 모델들로부터 헤어드레서 메이크업 아티스트 등 여러 손길을 거쳐 탄생하는 종합예술로 `화려함` 그 자체다.
갤러리에서는 우리 눈에 익숙했던 패션화보며 광고사진, 영화포스터까지도 작품이 되어 숨쉰다. 브랜드나 디자이너 이름을 빼고 화보 대신 미술관에서 보면 같은 작품이라도 다른 메시지로 볼 수 있다는 즐거움이 있다.
그 무대는 9월7일까지 계속되는 서울 통의동 대림미술관(이사장 한우정) 기획전`다리를 도둑맞은 남자와 30개의 눈`이 그것. 부제는 `사진에 옷을 입히는 남자 고초와 30인의 한국 패션사진전`. 전시회에는 프랑스의 패션사진작가 고초와 한국 패션사진가 30명의 작품 180여점이 소개된다.
이 전시의 하이라이트는 고초의 `옷을 입은 사진`의 타이틀를 달고 보여지는 7작품.고초 본인이 기획하고 자신이 모델이 되어, 그의 친구인 미국의 사진가 낸 골딘이 촬영한 후 세계 유명 디자이너들에 의해 제작된 의상을 사진에 직접 바느질해 입혔다. 낸 골딘은 미국 현대 사진계를 이끌어 온 영향력있는 작가로 미술계서도 주요한 인물로 꼽힌다. 세계 유명디자이너들은 장 콜로나, 안 드멜메스터, 오시마 베르솔라토, 조세 레비, 마틴 마지엘라, 더크 비켐버스, 아네스 베 등이다. 우리나라 작가들은 주문을 받고 옷 사진을 찍지만 고초는 거꾸로 몸을 찍고 옷을 입혔다는 점에서 패션과 사진의 관계가 극명하게 대비된다.
이번 전시의 또다른 특징은 한국의 사진 작가 30명의 작품을 모두 프린터사인 한국 엡손의 출력시스템으로 프린팅한 작품들이라는 점이다. 기존 유명 사진 작가들을 대상으로 디지털 출력을 통한 사진 전시회의 시초라 `디지털 출력 사진전`이라고 할 수 있다.
대림미술관측은 “풍부한 예산과 스폰서가 관계되고, 아울러 예술과 상업주의가 절충된 패션 사진은 우리 시대가 만들어낸 독특한 이미지”라며 “`작품 사진은 정통 아날로그 기술`이라는 고정관념을 깰 수 있는 가능성과 다양성을 함께 엿볼 수 있는 전시”임을 강조했다. (02)720-0667
<박연우기자 ywpark@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