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새 영화> 워쇼스키 형제가 만든 '브이 포 벤데타'

선과악, 자유와 책임,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성찰 돋보여

'브이 포 벤데타'를 말할 때 '매트릭스'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전 세계 영화계에 문화적, 철학적 충격을 몰고 온 '매트릭스' 시리즈의 워쇼스키 형제가 제작, 각본을 맡았기 때문이다. '매트릭스'라는 실재와 허구를 교묘히 엮어내는 가상현실세계를 만들어냈던 워쇼스키 형제는 '브이 포 벤데타'에서 영국이라는 현실적인 공간에서의 가상세계를 만들어냈다. 이 작품은 1981년 영국의 월간 만화잡지 '워리어'를 통해 첫 선을 보인 후 1988년 DC코믹스에 의해 완간됐다. 1990년 흑백버전으로 컬러버전으로 전환한 앨런 무어와 데이비드 로이드의 그래픽 소설로 재탄생된다. 1980년대 영국은 대처 총리 체제하의 극우보수 정부가 강한 영국을 모토로 영국 재건에 나섰을 때. 두 작가는 국가 발전이라는 공동선 아래 개인의 자유와 의지가 지배당하는 현실을 비판했다. 영화는 미국이 벌인 제3차 세계대전 후 당과 정부에 의해 완벽하게 통제된 영국사회를 배경으로 한다. 사람들은 전쟁과 약탈, 이름모를 바이러스, 종교간 분쟁 등으로 공포에 떨면서 서틀러 의장의 철권정치를 용인한다. 통금 체제를 감시하는 정권의 하수인 핑거맨들로부터 농락당할 뻔한 이비(나탈리 포트만 분)앞에 가이 포크스 마스크를 쓴 남자가 나타나 구해준다. 철학적 수사를 쉼없이 내뱉는 그는 이비를 데리고 건물 옥상에 올라 헌번재판소가 마치 불꽃놀이를 벌이듯 폭파되는 장면을 보여준다. 그는 'V'(휴고 위빙)라는 이니셜로 소개할 뿐. 국영 BTN방송을 장악해 영국민을상대로 잃어버린 자유에 대해 역설하고 다음해 11월5일 의사당 건물이 파괴되는 자리에 와줄 것을 주장한다. 11월5일은 가이 포크스라는 인물이 400여년 전인 1605년 영국의 제임스 1세 정부의 독재에 항거하기 위해 36배럴의 화약을 숨겨 의사당 지하터널로 잠입했다 체포돼 처형당했던 날이다. 이비는 V를 보며 혼란을 느낀다. 문학적, 철학적 소양을 두루 갖추고 있는 그가 언뜻 무정부주의자로서 개인의 행복을 추구하는 듯 하지만 V 자신의 개인적인 복수심도 깔려 있다는 것을 느끼기 때문이다. 이비는 치명적인 바이러스로 동생을 잃고,이에 항의해 시위대에 적극 가담한 부모를 잃은 정권의 희생양. V는 세상을 구하려는 히어로이면서, 동시에 개인의 복수를 꾀하는 안티 히어로적 인물이다. '런던의 목소리'라고 알려진 BTN의 유명 앵커, 영국 가톨릭을 대표하지만 어린 소녀를 범하는 이중적인 얼굴을 가진 주교의 잇단 살해 사건을 통해 수사관 핀치(스티븐 레아)는 V가 기록조차 사라진 한 수용소와 연관돼 있음을 알게 된다. 영화는 이비의 정신적 혼란과 함께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 영국민들이 서서히 왜곡된 지배구조를 일깨워가는 과정 등을 담으며 V의 정체에 대해 접근하기 시작한다. '브이 포 벤데타' 역시 '매트릭스'와 마찬가지로 인간의 삶과 자유에의 의지를 다루고 있다. 원작이 있는 까닭에 보다 확실히 메시지가 전해진다. 검은색이 바탕이 된 블루톤의 영상은 우울한 미래를 연상시킨다. 수많은 SF영화가 암울한 미래에서 영웅들의 활약으로 허무맹랑한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반면, 이 영화는 대중의 자각이 해피엔딩을 이끌어낸다. '매트릭스'만큼의 놀라움과 충격은 던져지지 않는다. 대신 선과 악, 자유와 그에 따른 책임, 인간의 존엄성에 대해 단 한 순간이나마 성찰하게 한다. '레옹'의 어린 연인이었던 나탈리 포트만의 성숙한 면모를 만날 수 있는 게 무엇보다 반갑다. '클로저' '프리존' '스타워즈 에피소드3' 등을 통해 서서히 성장해왔던 그가 독자적인 존재감을 드러낸 것. 그리고 무엇보다 휴고 위빙의 배우로서 도전이 흡족함을 준다. '매트릭스'에서 네오를 끈질기게 괴롭혔던 스미스 요원을 기억하는가. 이 영화의 제작자 워쇼스키형제는 다시 한번 그에게 어려운 임무를 맡겼다. 이 영화에서 V역의 휴고 위빙은 단 한 순간도 얼굴을 드러내지 않는다. 심한 화상을 입은 손이 왜 마스크를 벗을 수 없는 지 보여줄 뿐. 그러나 그는 목소리와 신체 연기 만으로 얼굴 표정이 없이도 생생히 살아있는 캐릭터를 만들어냈다. 17일 전 세계 동시 개봉된다. 상영시간 13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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