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역사와의 대화

광복절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상반된 이념의 대규모 집회가 동시에 열렸다. 때마침 대법관 인사를 놓고 법관들끼리도 보혁(保革) 대결 조짐을 보여서인지 타임머신을 타고 1945년으로 되돌아간 느낌을 받기에 충분했다. 이처럼 좌우 갈등이 피크에 이르고 있는 요즘 소설가이자 사회평론가 복거일은 `죽은 자들을 위한 변호…21세기의 친일 문제`라는 저서를 통해 시대상황이 만들어낸 비자발적 친일 행위에 대한 처단의 타당성과 효용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또한 육당 최남선, 춘원 이광수 등에 대해 그들의 업적은 무시한 채 친일 행위만을 문제 삼는 단죄의 도덕적 권위도 부정했다. `일제시대`라는 말에 조차 알레르기적 거부반응이 주류를 이루는 국내 풍토에도 불구하고 그가 이처럼 엄청난 도발(?)을 감행한 것은 역사란 무엇인가에 대한 진지한 자기성찰의 결과가 아니냐는 평가도 받고 있다. 그의 견해는 “역사란 사회에 속한 인간의 과거를 연구하는 것이고, 사회는 개인의 의도를 초월하는 힘으로 움직이는 만큼 과거 특정 개인에 대한 단죄보다는 그 시대의 사건, 제도, 정책 등에 대한 연구를 통해 미래를 설계해야 한다”는 영국 역사학자 에드워드 H. 카아의 주장과 맥이 닿아 있다.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과거청산은 쉽지 않은 과제다. 불행히도 과거청산과 사회적 번영 사이에는 상충관계(trade-off)가 존재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최근 공산주의 체제를 청산한 국가들의 고위직에 여전히 공산당 관계자들이 포진해 있는 것이나 사담 후세인 체제의 주력들이 지금 미 군정의 핵심을 이루고 있는 `불사조 현상`이 나타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물론 악질적 반민족 행위자까지 처벌은 커녕 오히려 득세하는 것은 모순이다. 그러나 인민재판과 같은 `거친 정의`를 통해 친일파를 숙청한 북한은 옳고 남한은 정체성 없는 친일파 집단이라고 매도하는 급진좌파의 주장은 민족정기라는 대의명분을 이데올로기 확산의 도구로 삼는 선전선동 전술의 흔적이 짙다. 특히 그들은 통일, 민주화, 인권, 개혁 등 이미지 선동적 용어의 선점을 통해 주한미군 철수 등과 같은 친북 노선의 선봉대 역할을 하고 있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혼란한 시대에 당장은 선한 것으로 보이지만 나중에는 거대한 악의 뿌리가 된 이념의 광기를 우리는 너무 많이 봐오지 않았나. <정구영기자 gychung@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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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구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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