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원짜리 하나면 "나도 게임영웅"
지킬박사와 하이드는 인간이 선과 악을 동시에 지닌 이중적 존재라는 사실을 잘 표현하고 있다. 선과 악 뿐만 아니라 사람들은 여러 가지 양면성을 갖고 산다.
현대인은 잘 표현하지는 않지만 마음 속에 또 다른 자신을 키운다. 그 모습은 항상 영웅이다. 하지만 그 것은 마음뿐이다. 실제 사람들 앞에서면 항상 어쩔 수 없이 한명의 소시민인 자신을 발견한다. 슬픈 일이다.
아셈 회관 지하 오락실 게임챔프에서 만난 강민석(가명)군도 그런 현대인중의 한명이다. 경기 고등학교 1학년에 재학중인 그는 누구나 칭찬하는 모범생. 하지만 정작 그 자신은 아웃사이더다.
그래서 강군은 남들처럼 마음속에만 존재하는 자신을 키운다. 강한 비트와 빠른 박자에 몸을 맡기고 목청이 터져라 노래를 부르는 이 시대 최고의 보컬을 꿈꾼다. 가끔은 부드럽게 때로는 거칠게 베이스 기타를 치고 드럼을 두드린다.
강군은 마음 속에만 있던 영웅의 모습을 게임챔프에서 겉으로 드러낸다. 퍼커션프릭스 앞에 앉아 드럼을 두드리는 그의 모습은 환상적이다. 쉴새 없이 화면에 올라오는 다섯 개의 화살표와 하나의 발 모양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쳐낸다.
시속 150km의 속도를 넘나드는 공을 타자가 감각으로 쳐내는 것처럼 그의 드럼 치는 모습은 반사신경에 의해 본능적으로 움직이는 것처럼 보인다.
터부(화면에 뜨는 화살표)를 쳐낼 때 마다 뜨는 울긋불긋한 네온 불빛과 `Perfect'라는 마크는 보기만 해도 속이 시원하다. 옆에서서 입을 다물지 못하는 이들은 자기 차례를 기다리기 보다는 강군의 현란한 드럼 솜씨에 빠져들어 발길을 멈춘 듯하다.
퍼커션프릭스는 일본 코나미사가 만든 드럼 시뮬레이션 게임기다. 요즘 오락실을 찾으면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한다. 얼마전까지, 어쩌면 지금까지 전국을 휩쓸고 있는 DDR류의 `발로만 댄싱' 게임기 인기가 시들해지고 손으로 하는 음악 게임기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물론 `손으로' 게임기도 코나미가 만든 것이 대부분. 퍼커션프릭스 옆에 있는 기타프릭스와 댄스프릭스도 코나미 출신이다. 기타프릭스에 500원만 넣으면 게임오버라는 글자가 화면에 뜨기까지는 누구나 베이스 기타리스트가 된다.
하지만 타인이 부러움에 찬 눈길을 받으려면 적어도 몇 달치 용돈을 `인서트 코인기'에 고스란히 바쳐야 된다. 강군이 퍼커션프릭스에 투자한 돈은 6개월 동안 대략 40만원. 고등학교 1학년의 지출치고는 많은 편이다.
게임챔프에서 일하는 한 아르바이트생은 음악 시뮬레이션 게임기 한대당 하루에 대략 7만원 정도의 수입을 올린다고 귀띔한다. 게임챔프엔 이런 게임기가 대략 40대 정도 있다. 놀라운 사실은 일제 일색이던 시뮬레이션 게임기가 점점 국산으로 채워진다는 점.
코나미 출신들 옆에는 어뮤즈월드의 이지투디제이가 있다. 또 안다미로의 펌프(펌프는 일제 DDR보다 많다), 이오리스의 DM18 등 국산 댄싱 게임기 앞에는 차례를 기다리는 `우드비 댄서'들이 줄을 선다.
아까 그 아르바이트생은 게임챔프 주인이 어뮤즈월드의 이지투댄서를 예약해 놓았지만 물건을 들여놓으려면 한달 가량 기다려야 하다고 말한다. 어뮤즈월드가 재고를 감안해 한정된 물량만을 생산하고 있기 때문이란다.
11월 초가 되면 인터존21이 선보이는 AC퍼커스도 오락실에서 볼 수 있다. AC퍼커스 또한 손으로 하는 드럼 댄싱 머신이다. 코나미의 댄스프릭스가 센서를 이용해 허공에 손짓을 하는 것이라면 AC퍼커스는 드럼을 치며 리듬을 타고 춤을 춘다.
이순간 강군은 펌프 위에서 무아지경에 빠져있다. 그는 지금 마음속에서만 그려온 영웅의 꿈을 오락실에서 실현하고 있다.
입력시간 2000/10/26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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