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외화표시 외국환평형기금채권(외평채) 발행을 위해 뉴욕에서 대기하고 있던 직원을 모두 귀국시켜 사실상 발행작업을 중단했다. 리먼브러더스의 파산보호 신청과 AIG의 유동성 위기로 국제금융시장이 꽁꽁 얼어붙은 게 가장 큰 이유다. 정부는 당초 10억달러 규모의 외평채를 발행하고 산업은행ㆍ한국가스공사 등 금융기관과 공기업이 모두 100억달러 안팎의 달러를 조달해 달러 부족을 해소할 계획이었다.
재정부는 외평채 발행 가산금리가 떨어지기는커녕 오히려 오르는 상황이 이어지자 외평채 발행을 위해 뉴욕에 머물던 직원을 모두 귀국시키는 등 외평채 발행시도를 멈췄다. 하지만 기획재정부의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아직 외평채 발행을 완전히 포기한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달러 조달을 위한 외화채권 발행금리는 지나칠 정도로 급등하고 있다. 월가는 물론 전세계 금융시장이 미국 국채 등 안전자산으로 몰리면서 심지어 한국 정부의 채권인 외평채 가산금리까지 예상 수준을 뛰어넘고 있다.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지난 15일 현재 유럽시장에서 5년 만기 한국물의 크레디트디폴트스와프(CDS) 프리미엄은 약 1.65%포인트(165bp)로 전거래일 대비 0.27%포인트나 급등했다. CDS 프리미엄은 해당 채권의 부도위험을 나타내는 지표라는 점에서 그만큼 우리나라 채권의 부도 위험이 높아졌다는 뜻이다.
외평채 발행연기로 공기업과 은행권의 외화자금 조달에도 빨간불이 커졌다. 정부의 외평채 발행 이후 공기업ㆍ금융권 등이 조달할 예정이던 달러 규모는 100억달러 안팎으로 알려졌다. 산업은행은 당초 외평채 발행 직후 그 가산금리를 벤치마크(기준)로 삼아 10억달러 규모의 해외채권을 발행할 계획이었으나 이를 무기한 연기했다. 가스공사도 가스요금 보전용 운전자금 마련을 위한 약 5억달러의 해외채권 발행계획을 뒤로 미뤘다. 우리은행 역시 해외채권 발행 계획을 연기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 증권사의 IB업무 관계자는 “당장 외화자금이 필요한 업체들의 경우 높은 금리를 주고서라도 발행에 나서겠지만 자금사정이 급하지 않은 기업들이라면 서두를 필요가 없다는 게 발행시장 쪽 분위기”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