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즈 바이러스(HIV)에 감염된 사실이 나중에 밝혀진 혈액에 대한 안전관리체계가 허술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HIV 감염 헌혈자 및 수혈자의 이름과 주민등록번호ㆍ주소, 가족들의 연락처와 직장 등이 적시된 공문서가 유출돼 관리체계상의 문제점도 함께 드러났다.
26일 대한적십자사 혈액사업본부에 따르면 국립보건원은 지난해 12월 헌혈한 A모(남ㆍ21)씨가 올 3월 헌혈 때 실시한 검사에서 HIV에 감염된 것으로 확인됐으나 넉달이 지난 7월19일에야 혈액사업본부에 A씨의 혈액에서 분리된 혈장이 혈액제제 원료로 쓰였는지 확인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A씨가 올 5월7일 HIV 감염자로 최종확인된지 두 달 넘게 지나서다.
이에 따라 A씨의 혈액에서 분리된 혈장이 섞인 혈액제제 원료가 국내의 2개 제약사에 공급돼 이미 완제품으로 만들어졌거나 제조중인 채 방치되는 사태가 빚어졌다. 보건원과 혈액사업본부는 7월29일에서야 제약회사에 해당 완제품 및 혈액제제 원료에 대한 폐기처분을 지시했다. 이 같은 상황에 어떻게 대처해야 한다는 정부 차원의 지침이 없고, A씨의 혈액을 수혈받은 60대 남자 2명이 HIV에 감염돼 보건원이 수혈 등으로 인한 추가감염 여부를 파악하는 데만 신경을 썼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혈액사업본부 조남선 안전관리부장은 “보건복지부ㆍ국립보건원ㆍ혈액사업본부 등이 공동으로 혈액사고대책반을 구성, 신속한 사고원인 규명 및 사후조치를 실시할 필요가 있다”며 “이 같은 사태가 발생한 경우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를 정한 정부 지침이 없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한편 전현희 변호사는 26일 서울지법 기자실에서 HIV 감염 헌혈자 및 수혈자의 이름과 주민등록번호ㆍ주소, 가족들의 연락처와 직장 등이 적시된 공문서를 공개해 감염자에 대한 인권침해는 물론 에이즈 관리에 허점을 드러낸 것 아니냐는 비난이 제기되고 있다. 후천성면역결핍증예방법에는 에이즈 예방과 감염자의 보호ㆍ관리사무 종사자, 감염자기록 관리자 등에 대해 재직중에는 물론 퇴직 후에도 감염자 관련 사항을 유출하지 못하도록 돼 있으며 위반시 3년 이하의 징역이나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돼있다. 혈액사업본부측은 “공문서 유출경위에 대해 자체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검찰수사 여부는 내부조사 이후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임웅재기자 jaelim@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