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기고] 孟정승의 '公堂問答'

황원갑 <소설가ㆍ한국풍류사연구회장>

성군(聖君) 밑에 명신(名臣)이 있었다. 세종대왕이 조선왕조 500년간 문민정치의 기틀을 다지고 태평성대를 이룩할 수 있었던 데는 당대의 명재상이요, 청백리인 방촌 황희(黃喜)와 고불(古佛) 맹사성(孟思誠)의 공평무사하고 헌신적인 국정수행에 힘입은 바 컸다. 이들에게는 공통점이 있었다. 첫째는 고려 말에 태어나 벼슬길에 올랐다는 점이다. 나이는 맹 정승이 세 살 위였고 과거에도 3년 앞서 급제해 비슷하게 벼슬길에 나섰으나 두 사람 다 고려가 망하자 미련 없이 관직을 버렸다. 그리고 조선조가 들어서자 백성을 위해 다시 공복(公僕)의 길을 걸었다는 것도 같았다. 둘째는 정승에 올랐어도 검소하고 청렴결백했다는 점이다. 셋째는 성품이 소탈하고 풍류를 알아 수많은 일화를 남겼다는 사실이다. 넷째는 두 사람 모두 자연의 순리를 좇아 청빈무욕하게 살았기 때문인지 황 정승은 90세, 맹 정승도 79세까지 장수했다는 점이다. 이들이 남긴 재미있는 일화는 많은데 맹 정승이 남긴 대표적 일화가 ‘공당문답’이다. 어느 해 한식. 맹고불은 온양의 부모님 산소에 성묘하고 서울로 돌아가고 있었다. 용인을 지나는데 갑자기 봄비가 쏟아졌다. 할 수 없이 길가 주막을 찾아 비가 그치기를 기다렸다. 안으로 들어가니 웬 젊은 선비 하나가 아랫목에 앉아 있었다. 본래 검소해 시골 노인처럼 아무렇게나 걸치고 다니던 차에 비까지 맞아 옷이 흠뻑 젖었기에 맹고불은 문간에 앉아 날이 개기를 기다렸다. 그러자 하인들을 거느리고 앉아 있던 젊은 선비가 심심했던지 “노인장, 이리로 오셔서 편히 앉으시지요”하고 권하는 것이었다. 그는 영남 사람으로 과거 보러 가는 길이라고 했다. 두 사람은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는 동안 심심풀이 삼아 장기를 두었는데 승부는 번번이 맹고불의 승리로 돌아갔다. 그래서 이번에는 묻고 대답하는 말끝에 ‘공(公)’자와 ‘당(堂)’자를 달아서 누구의 말문이 먼저 막히는가 보기로 했다. 먼저 맹 정승이 시작했다. “무엇하러 서울에 가는공?” “녹사(錄事)시험 보러 간당.” “내가 합격시켜줄공?” “에이, 놀리는 것은 옳지 않당.” 그러는 사이 날이 개서 두 사람은 길을 떠나 서울로 올라와 헤어졌다. 그리고 며칠 후 맹 정승이 공무를 보고 있는데 한 젊은이가 녹사시험에 합격했다고 인사를 하러 왔다. 고개를 들어보니 그때 그 선비가 아닌가. 맹 정승은 장난기가 발동했다. “어떻게 되었는공?” 그러자 그 젊은이는 자신이 인사하러 온 우의정이 바로 며칠 전 허름한 옷차림의 그 촌로인지라 깜짝 놀라 엎드려 대답하기를, “죽어 마땅하옵니당!” 했다고 하니 그 선비도 풍류를 아는 사람이었던 모양이다. 곁에서 영문을 몰라 하는 사람들에게 맹 정승이 자초지종을 이야기해주자 모두가 배꼽을 잡고 웃음을 터뜨렸다. 맹사성은 공민왕 9년(1360)에 개성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신창(新昌). 고불은 5세에 글자를 깨우쳤고 한 가지를 가르쳐주면 열 가지를 알 정도로 영리했다. 그가 최영(崔瑩) 장군의 눈에 들어 그의 손녀사위가 된 것도 비상하게 총명했기 때문이었다. 기울어가던 고려 말에 태어나 27세에 과거에 급제해 벼슬길에 나갔으나 그의 나이 33세 때 고려조가 망하고 조선조가 섰다. 한동안 정신적 방황을 거듭하다가 백성을 위해 헌신하기로 결심하고 다시 벼슬길에 올라 47세 때인 태종 6년(1406)에 이조참의로 등용됐다. 태조와 태종 때에는 이른바 ‘혁명주체’가 아니라고 따돌림과 질시도 많이 당했지만 성실근면한 인품, 청렴결백한 자세를 인정받아 여러 벼슬을 거쳐 세종 9년(1427)에는 마침내 우의정에 올랐다. 황희는 같은 날 좌의정이 됐다. 맹 정승은 세종 20년에 세상을 뜰 때까지 황 정승과 더불어 세종대왕의 치세에 없어서는 안될 인물이었다. 요즘 세상에 녹미만 받아 나물반찬으로 끼니를 때우는 정치인이나 고위공직자가 있을까. 없다. 맹 정승과 황 정승처럼 추호의 사심(私心) 없이 마음을 비우고 진정한 공복의 길을 걷는 사람은 있는가. 찾아보기 힘들다. 정국이 어지럽고 시대가 난세일수록 이들과 같은 청백리, 풍류재상이 그립고 아쉬운 것은 비단 한두 사람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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