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기자의 눈] 아프간 총선의 진실

고은희 기자<국제부>

“여성들은 집 바깥에서 일하는 것이 금지된다. 부득이 밖에 나갈 때는 부르카를 입어야 한다.” 지난 96년 아프가니스탄의 수도 카불을 점령한 탈레반은 이슬람 율법을 재해석한 포고령을 내렸다. 부르카란 눈 주위를 망사로 처리한 온몸을 가리는 검은색 의상을 의미한다. 서구 사회에서는 대표적인 여성 억압의 상징물로 악명이 높은 의상이다. 그런 부르카가 이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운명이다. 18일 아프가니스탄은 36년 만에 처음으로 총선을 실시했으며 이 선거에서 여성에게 하원의석의 25%를 배정했다. 이번 선거에 출마한 여성 후보들은 부르카를 벗고 홍보사진을 찍는 등 아프간의 변화된 분위기를 감지하게 한다. 그래서 이번 아프간 총선을 민주화 진전의 한 단계로 평가하는 시각이 강하다. 그러나 부르카를 벗어던진다고 여성 해방이 실현된 것은 아니다. 미국 주도의 연합군이 탈레반 정권을 붕괴시킨 지 4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지만 아프간 여성들은 여전히 집 밖에 나가기 전에 부르카를 착용한다. 정권은 바뀌었지만 아프간 사회에서는 아직도 이슬람 원리주의에 따른 성차별적인 시각이 강하게 남아 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부르카를 벗을 수 있게 만든다고 해서 아프간에 민주주의가 정착됐다고 말할 수도 없다. 민주 선거라는 이름 하에 아프간에서 벌어진 온갖 추태들은 이번 총선에 민주화와 같은 거대 담론을 끼워넣는 것을 낯부끄럽게 한다. 문맹률이 70%에 달하는 아프간에서 하원의원 249명과 주의회 의원 240명을 뽑는 선거에 6,000명의 후보가 출마해 후보 사진과 각종 상징물이 없으면 투표가 불가능했다. 서방 언론들이 애써 모른 척하는 이런 혼란의 배경에는 미국이 2001년 9ㆍ11 테러가 발생한 뒤 주범인 오사마 빈 라덴을 잡는다는 명목으로 성급하게 아프간을 침공하고 그 후 이라크와 아프간 침공 등으로 성과도 없이 돈 낭비를 했다는 비난이 잇따르자 서둘러 발을 빼기 위해 민주화를 위한 아무런 노력 없이 무리하게 총선을 진행한 데 있다. 미국이 침공하기 이전부터 아프간의 현실을 영화에 담았던 모흐센 마흐말바프 감독은 “탈레반은 여성들에게 부르카를 씌웠으나 CNN과 BBC는 전세계 시청자들에게 부르카를 씌웠다”라고 말했다. 서구 중심의 언론들이 만들어낸 부르카를 뒤집어쓰고서는 아프간에서 현재 벌어지는 일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파악하기 어려워진다. 부르카를 벗고 아프간의 진실과 마주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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