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이공계를 살리려면

위기에 몰린 이공계를 살려보겠다고 정부와 기업은 물론이고 이공계 교수들까지도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과학기술만이 국가 경제발전의 원동력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아서인지 정부는 연일 각종 정책들을 내놓고 있다. 먼저 기업들이 국가가 권고하는 일정수의 이공계 출신을 채용하면 인건비의 일부를 지원해주고 세제혜택까지 주기로 했다. 교육부도 우수한 청소년들을 이공계로 끌어들이기 위해 대학수학능력시험 수리ㆍ과학탐구 영역 성적이 1등급인 자연계열 학생이 이공계 대학에 진학할 경우 4년간 전액 장학금을 줄 계획이며, 매년 우수 이공계 대학원생 5,000명을 선발해 등록금 전액을 지급할 예정이다. 정부의 이 같은 정책에 힘 입어서인지 기업들도 이공계 살리기에 팔을 걷어부쳤다. 삼성전자는 앞으로 전체 인력의 70% 이상을 이공계 출신으로 채울 계획이라 한다. LG전자ㆍ포스코 등 여타 기업들도 이공계 대학 출신자들에게 취업의 기회를 확대해주기로 했다. 이공계 대학 교수들도 이공계 기피현상 타개를 위해 병역대체 근무제도 도입 등 획기적인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부존자원이 별로 없는 우리나라의 장래가 과학기술에 달려 있음을 감안할 때 우수인력을 이공계로 유치하려면 이 정도의 당근책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그러나 이 같은 정책이 과연 얼마나 약발을 받을지 의문이다. 의대ㆍ치대ㆍ한의대의 진학을 고려하는 우수한 학생들이 하루아침에 이공계로 방향을 바꾸는 경우는 별로 없을 것이다. 또한 사법시험ㆍ행정고시ㆍ외무고시 등 소위 3대 시험 응시자도 크게 줄어들지 않을 전망이다. 특히 법대생들뿐만 아니라 일부 이공계 출신까지 사법시험에 도전, 사법시험 응시자가 몇 년째 3만명을 넘어서고 있어 `고시 망국병`도 치유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도 우수한 젊은이들은 이공계를 기피하고 의대지원이나 사법시험 등에 목숨을 걸 것이다. 이는 부와 명예를 가질 수 있는데다 평생직장이 보장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특히 국제통화기금(IMF)을 거치면서 이공계 기피현상이 더욱 심화됐다. IMF 당시 평범하게 직장생활을 하던 사람들이 대거 구조조정을 통해 실업자 신세가 되는 것을 보았다. 평생직장이란 개념이 사라지면서 조기퇴직으로 인한 `오륙도` `사오정` `삼팔선` `이태백`이라는 신어조까지 등장했다. 이런 사회현상 속에 의사나 변호사 등의 직업은 더욱 인기를 끌 수밖에 없다. 그러니 앞으로도 특별한 변화가 없는 한 우수 학생들은 계속 그러한 직업에 몰려들 것이다. 이공계를 정말 살리려면 정부의 각종 정책 못지않게 과학기술인들이 평생 일할 수 있는 터전이 마련돼야 한다. IMF 당시 기업들이 가장 먼저 이공계 출신들이 주로 근무하고 있는 연구소를 축소하거나 없애버렸다. 이에 따라 과학기술인들이 제일 먼저 구조조정을 당하고 회사를 떠나게 됐다. 얼마 전 미국의 과학학술지 `사이언스`도 우리나라가 외환위기 당시 과학기술인들을 대거 실직한 점이 이공계 기피현상의 주요 원인으로 꼬집은 바 있다. 또 한국산업기술재단이 20~30대 네티즌들을 대상으로 `기술인(이공계 출신)에 대한 사회인식조사`를 벌인 결과 응답자의 76%가 이공계 출신이 일하는 것보다 제대로 대우를 받지 못한다고 생각하고 있어 기술인 경시풍조를 엿볼 수 있다. 따라서 이공계를 살리기 위해서는 과학기술인들의 신분보장과 사기진작을 위한 대책 마련이 우선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과학기술인들의 안정된 연구보장과 적절한 대우가 지속된다면 우수한 젊은 인재들이 이공계로 몰릴 것이다. 정부정책과 기업들의 인식변화가 함께 병행되지 않는다면 우리의 이공계 수준은 현상태를 영원히 벗어나지 못할 것으로 생각된다. <윤종열 사회부장 yjyun@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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