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기자의 눈] 有公無罪 無公有罪

이재철 기자<사회부>

“모범을 보여야 할 지도층 인사가 불법을 저질렀다면 일반인보다 더 무겁게 처벌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차라리 이번 기회에 공익에 헌신한 인사들에게 ‘음주면허증’을 발급해줍시다.” 최근 음주운전으로 면허를 취소당한 국립대 A모 교수를 법원이 구제해주자 한 인터넷 뉴스 사이트에는 법원의 판결을 성토하는 네티즌들의 반응이 끝없이 올라오고 있다. 사건의 발단은 이렇다. 국내 굴지의 한 국립대 교수인 A씨는 혈중 알코올 농도 0.228%(0.1% 이상이면 면허취소) 상태에서 택시기사가 자리를 비운 사이 자신의 아파트 단지 내에서 택시를 100여m 운전한 혐의로 면허가 취소됐다. 이에 서울행정법원은 “A교수가 바람직한 시민으로서 모범을 보여 건전한 사회ㆍ문화적 기반을 조성하는 데 기여하는 등 음주행위로 인해 침해한 공익을 벌충할 수 있는 공로가 있다고 인정된다”고 판결했다. 그러나 법원의 이번 판단을 접한 여론의 호흡은 매우 거칠다. “봐줘도 너무 봐줬다”는 식이다. 법원 내부에서조차 이번 판결을 납득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서울고등법원의 한 관계자는 “위법성이 중대한 사안에 대해 정상참작 사유만을 가지고 행정처분 자체를 뒤집은 만큼 다소 무리가 있다”며 “더구나 음주운전은 타인의 생명과도 직결된 부분으로 더욱 엄격한 법적 판단이 요구된다”고 아쉬워했다. 비근한 예로 지난해 9월 대법원은 술에 취한 상태에서 주차 위치를 바로잡기 위해 바퀴를 불과 50㎝ 이동시킨 피의자에 대해 유죄를 인정, 벌금 150만원을 확정했다. “바퀴 하나라도 도로에 진입했다면 음주운전에 해당한다”며 엄격한 법적용을 강조한 대법원의 판단은 분명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 사건을 맡았던 경찰조차도 “혈중 알코올 농도가 0.12%를 초과하면 법적으로 감경 대상에서 무조건 제외된다”며 즉각 항소의지를 밝혔다. 음주운전에 따른 면허취소는 법 테두리 내에서 정상적으로 생활하는 시민들이 겪게 되는 사실상 가장 가혹한 행정처분 중 하나다. 그럼에도 ‘정부 자문위원이었고 바람직한 시민의 모범을 보였다’는 이유로 이 형벌을 면하게 한 법원의 판단은 소위 지도층 인사는 봐주고 지위 낮고 힘없는 일반 시민들만 벌하겠다는 이중잣대의 다름 아니다.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하다’는 법정신의 기초조차 망각했다면 차라리 법원은 그 간판을 내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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