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서리꽃 눈부신 雪천지

■ 태백산 산행 앞을 분간할 수 없는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사람들이 하나 둘 모이기 시작한다.`꾼`이라 할 만한 몇몇 등산객들의 머리 위에는 벌써 랜턴이 올려져 있다. 여기서 내리 쬐는 불빛을 따라 사람들이 떼를 지어 꾸물꾸물 이동한다. 주변의 풍경이야 얼마 후 산꼭대기에서 마주칠 겨울 장관에 대한 기대감으로 아예 볼 생각을 접어 두었다. 군데군데 길이 미끄럽다. 올 겨울 한 두번 내린 눈이 녹아 여기저기 빙판을 만들었다. 겨울에 내린 눈은 여간해서 사그라 들지 않는다 한다. 두 어시간 올랐을까. 이제 거의 정상에 오른 듯 한 데 갑자기 매서운 바람이 옷깃을 파고 든다. 눈보란지 진눈깨비인지 사선을 그으며 내리치는 모진 바람에 눈을 뜰 수가 없다. 지구상에 3극점이 있다더니 그 중 하나가 바로 여기 산 위에 있다. 주변이 어렴풋이 밝아지면서 예사롭지 않은 나무의 형상이 눈에 띈다. 그 유명한 태백산의 주목이다. 살아 천년, 죽어 천년 간다는 주목군락이 여기서부터 1km에 걸쳐 펼쳐져 있다. 가지마다 투명하게 빛나는 상고대(수증기가 갑자기 식으면서 나뭇가지에 얼어 붙은 서리꽃)가 멀리 속세를 떠났음을 실감케 한다. 주목은 말라 비틀어져 죽은 듯 보이면서도 때가 되면 물기를 머금고 파란 싹을 낸다. 삶과 죽음은 한 끗발 차이라고 비웃는 듯하다. 어린 주목을 살리느라 나뭇가지를 잘라 둘러쳐 준 발 뒷편으로 남극의 펭귄 떼처럼 옹기종기 모여 바람을 피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인다. 태백산은 높이 1,567m로 , , 등과 함께 의 명산으로 꼽힌다. 백두산에서 지리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의 분깃점에 해당하고, 산세는 비교적 완만하지만 최고봉인 장군봉(將軍峰)과 문수봉(文殊峰:1,517m)을 중심으로 크고 웅장한 느낌을 준다. 구한말 때는 이 일대에서 활약하던 신돌석 등 의병장들의 항일독립운동의 거점이 되던 곳이다. 산 정상에는 예로부터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천제단(天祭壇: 228호)이 있어 매년 에 태백제를 열고 제사를 지낸다. 신라 때 천제를 지냈다는 기록도 있다. 아쉽게도 날씨가 나빠 일출을 보진 못했지만 태백산의 일출은 유명하다. 멀리서 불끈 솟아 올라 온 천지를 붉게 물들이고 만물을 깨우는 태백산 해돋이는 산상(山上) 일출의 백미로 꼽힌다. 날이 밝은 후 서서히 눈앞에 다가오는 태산 준령들의 대(大)파노라마는 태백산 일출의 장관을 가히 짐작케 한다. 내려오는 길에 들른 망경사(望鏡寺)는 작지만 야간산행에 지친 등산객들의 휴식처다. 여기저기 자리잡은 등산객들은 어디선가 따뜻한 물을 구해 추위를 녹이느라 정신이 없다. 절 입구에 있는 용정(龍井)은 국내에서 가장 높은 곳에서 솟는 샘물로 알려져 있다. 여간해선 마르는 일이 없고 천제의 제사 때는 제사용 물로 쓰인다 한다. 한 국자 샘물은 산행으로 뎁혀진 가슴속 갈증을 시원하게 씻어준다. 샘터에서 만난 한 여행객은 “태백산은 6월 초순에 피는 철쭉이나 가을 단풍도 좋지만 이맘 때 오르는 겨울 등산이 최고”라며“지난 89년 강원도 으로 지정된 이후 해마다 등산객과 객이 끊이지 않아 이제는 환경 훼손을 염려해야 할 형편”이라고 말했다. [여행 메모] ◇등산길=해발 800m의 유일사 입구에서 장군봉 주목군락을 지나 천제단 정상에 오른후 당골로 하산하는 코스를 가장 많이 이용한다. 전체 5시간 정도 걸리고 어린이를 동행하면 1~2시간 더 잡아야 한다. 반대 방향으로 탈 수도 있고 경북 봉화쪽에서 오르는 길도 있다. ◇볼거리=당골에 있는 석탄박물관은 꼭 한번 들를만 하다. 97년 개관, 국내 석탄산업의 발전과정뿐 아니라 고생대에서 현재까지의 국내외 희귀광물을 전시, 지질생태박물관 구실을 한다. 지난 9일 개장해 18일까지 열리는`태백산 눈축제`도 이번 주 피크를 이룬다. 이 밖에 근처에 용연굴과 낙동강 발원지인 함백산 황지(黃池), 한강 지인 대덕산 검룡소(儉龍沼) 등이 있다. ◇숙박과 식당=유일사 쪽에 소규모 민박촌이 있고 당골에 잘 정비된 식당과 여관촌이 들어서 있다. 연화여관(033-552-6056), 대현장(552-3337) 등이 있으며, 감자옹심이(554-0077), 들꽃(552-3373), 한국관(554-3207) 등의 한식집이 있다. ◇교통=서울 청량리역에서 출발하는 강릉행 무궁화호 열차가 하루 5~6차례 있으며, 태백에서 내리면 터미널에서 수시로 유일사 입구와 당골로 향하는 시내버스를 탈 수 있다. 승용차를 이용할 경우는 영동고속도로와 국도를 타고 진입한다. (문의) 태백시청 관광문화과 033-550-2081, 태백역 552-7788, 태백버스터미널 552-3100. <태백=강동호기자 eastern@sed.co.kr>

관련기사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