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신공룡시대]<중>사각지대는 없다

"기술만 있으면 독자생존" 옛말… 모든영역이 기업연합 사냥터지난 2월 프랑스 철강업체 유지노와 일본 신일철과의 전략적 제휴 체결 자리에서 유지노 관계자는 엉뚱한 말을 했다. 양사의 제휴과정에 전혀 간여하지 않았던 한국의 포철을 거명하며 "이번 제휴에 참여할 것"이라고 발표한 것. 아무 생각이 없는 포철을 상대로 희대의 '기업간 공개구혼'이 전세계에 발표된 셈이다. 포철 경영진이 놀란 것은 당연했다. 외신을 타고 전세계에 뿌려진 공개구혼을 놓고 여기저기서 사실 여부를 확인하기 시작하자 포철은 노코멘트로 일관하다 3일 후 '정식 제휴 요청이 있으면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고 입장을 정리했다. "느닷없는 일었지요. 실무차원에서조차 거론되지 않았던 이야기였으니까요. 사실 포철의 입장에서는 역내에 있지않은 유지노와의 제휴가 절실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당시 포철의 입장을 정리, 발표한 포철 대변인의 말이다. 유지노는 룩셈부르크의 아베드, 스페인의 아세라리아와 합병 후 조강연산 4,500만톤대의 세계 제1의 철강사로 떠오른 회사. 합병과 짝짓기를 통한 세계 철강업체들의 이합집산 속에서 미래의 불확실성에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유지노가 제의한 연합전선 구축방안을 거절할 이유가 없다고 포철은 판단한 것이다. ■ 안주할 영역이 없다 메이저들 간의 합병과 짝짓기가 심화되면서 갈수록 특정지역이나 특정시장에서 기업들의 독점적 영역은 줄어들고 있다. 과거 독자적인 기술 또는 틈새시장만 확보되면 커다란 위협 없이 자신만의 생존영역을 지킬 수 있었지만 이제는 모든 영역이 글로벌 기업 연합의 사냥터로 변한 것. 특히 중소규모의 기업들에 있어서 최근의 '글로벌 기업연합'은 자신의 사냥터를 언제든지 빼앗아갈 욕심과 힘을 갖고있는 최대의 위협세력이 됐다. 지난해 12월 법정관리중인 한보철강과 환영철강이 전략적 제휴를 선언한 것도 더 이상 혼자서는 생존하기 어려워졌다는 위기의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바로 직전 INI스틸(옛 인천제철)이 강원산업을 인수하면서 국내 철근시장의 최강자로 떠오르자 충남 당진에 지역기반을 둔 양사가 지리적 이점을 활용해 생산ㆍ구매ㆍ판매 및 전산분야에서 포괄적 협력체제를 구축해 맞대응 해야 한다는 공동의 이해에 따른 것이다. ■ 모든 것은 연결된다 기업들의 '연합군단'만들기는 이제 대상이나 영역구분이 무의미할 정도로 확산되고 있다. 올해 초 LG전자가 '코카콜라 캠페인 2000'에 동참하기 위해 코카콜라측과 마케팅 제휴를 맺고 유럽지역 공동 판촉행사를 펼친 것이 대표적인 사례. 코카콜라 브랜드의 영향력을 활용해 유럽의 n세대TV 시장진출에 가속력을 극대화시키기 위한 전략이다. 이 연합전선에는 컴팩ㆍ맥도널드도 가세하고 있어 현지시장의 경쟁상대를 바짝 긴장시킨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이보다 더 노골적인 것은 전후방산업을 장악한 기업간에 연합전선을 구축하는 것. 최근 적극적인 세계화 전략을 추진하는 유지노는 자국 자동차업체인 르노를 앞세워 대규모 수요가 예상되는 아시아 시장에 진출한다는 목표를 세워놓고 있다. 독일의 티센크루프도 중국에 진출한 자국계 다임러크라이슬러ㆍ폴크스바겐를 등에 업고 자동차용 아연도금강판 중국공장을 건설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신일철 역시 유지노와의 제휴를 통해 아시아 자동차강판 시장을 나눠 갖는 대신 프랑스에 진출한 도요타의 자동차강판 공급라인을 안정적으로 확보한다는 치밀한 계산을 깔고있다. ■ 줄서기도 만만찮다 기술 기반이 탄탄하거나 시장 장악력이 검증된 초대기업들은 글로벌 연합전선을 손쉽게 구성하는 반면 그렇지 못한 기업들은 이도저도 아닌 어정쩡한 상태에 놓여있다. 생존을 위해서는 든든한 후견인을 잡아야 하지만 받는 만큼 줄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는 점이 고민이다. 지난 4월 일본의 가와사키가 NKK사와 전격적으로 합병을 결심한 것은 이 같은 고민을 엿볼 수 있는 사례. 세계 철강업계가 포항제철과 신일철ㆍ유지노 등 3개 절대강자간의 '글로벌 대연합'이 가시화되면서 마케팅ㆍ기술수준에서 뒤지는 양사가 생존을 위해 선택할 수 있는 것이 합병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포철ㆍ신일철 개개 기업만으로도 1대1 겨루기가 힘든 실력인데 이들의 연합전선 구축은 곧 바로 양사의 생존 기반이 위험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철강 대연합에 낀다면 살아남을 수 있겠지만 칼자루를 쥔 상대편에서는 관심조차 주지않아 결국 맞대응을 위해 비슷한 고민을 갖고 있는 기업들끼리 힘을 모은 것이라고 이해하면 된다. LG와 필립스가 CRTㆍ액정표시장치(LCD) 사업을 합작하자 삼성SDI가 일본 NEC와 유기EL(전계발광소자) 부문에서 손을 잡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강동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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