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中등 저가 수주 판쳐 일감 따내도 빚만 늘어

['IT코리아' 뿌리째 흔들린다] 시장전망 불투명 초고속인터넷1위 日 내줄판<br>장기전략 'IT839' "당장 힘든데…" 업체불만, 유망업체 다국적社 M&A표적, 시장잠식 가속

“5~10년 후 배부르게 먹을 먹거리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지금 필요한 것은 한계상황에 내몰린 중소 장비업계가 당장 먹고 살 ‘비상식량’입니다.” 국내 네트워크 장비업계의 기술력은 세계 최고 수준으로 꼽힌다. 올초 다국적기업 지멘스가 초고속인터넷 장비업계의 대표주자로 불리는 다산네트웍스를 전격 인수했던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런 IT 장비업계가 지금 벼랑 끝에 몰려 있다. 줄어드는 일감에 중국 등 신흥 경쟁국들의 저가공세까지 겹쳐 적정가의 절반 수준에서 덤핑낙찰이 성행하고 인수합병(M&A)을 통한 구조조정의 길조차 막혔기 때문이다. ◇장비업계 ‘고사 직전’= 중소 네트워크 장비업계는 현 상황에 대해 “부도위기에 내몰린 장비업체들은 물론이고 매출을 올리고 있는 기업들조차 상당수가 ‘마약’으로 연명하는 고사(枯死) 직전 단계”라고 진단한다. 일감부족으로 저가수주가 판을 치다 보니 당장은 회사를 꾸려나가지만 물량을 따낼수록 느는 건 빚뿐이라는 것이다. 시장전망은 더욱 불투명하다. 통신서비스사업자들의 투자는 지난 2001년 이후 계속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초고속인터넷 분야에서 지난해부터 KTㆍ하나로텔레콤이 주도한 초고속디지털가입자(VDSL) 시장을 보자. KT가 지난해 말부터 본격적으로 공급하기 시작한 50Mbps급 VDSL의 경우 실제 구축된 회선은 42만회선. 연말까지 추가 공급할 물량도 10만회선에 불과하다. 하나로텔레콤은 지금까지 6만5,000회선의 50Mbps급 VDSL을 구축했고 연내 추가계획이 없다. 하나로텔레콤의 한 관계자는 “휴대인터넷ㆍ두루넷 인수 등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는 데다 시장포화로 기존 망의 고도화에는 신중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반면 강력한 경쟁국인 일본은 올해부터 50Mbps는 물론 100Mbps 상용화에 나서고 있다. 초고속인터넷 세계 1위 자리마저 경쟁국에 내줄 위기에 처한 셈이다. ◇IT839의 장밋빛 미래는 ‘먼 나라 얘기’= 업계에서는 정보통신부가 추진 중인 IT839전략에 강한 불만을 숨기지 않고 있다. 한 중소 장비업체 사장은 “당장 1~2년을 버티기 힘든 중소 장비업계에 5~10년 후 먹거리를 찾겠다는 IT839전략은 남의 얘기”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정통부가 미래사업 육성을 위해 KTㆍSK텔레콤 등 주요 통신사업자들의 투자를 독려하고 있지만 중소 장비업체들은 이미 개발한 기술ㆍ제품의 투자원가도 회수하지 못한 상황에서 검증이 안된 미래 시장을 위한 기술개발에 나설 여력이 없다는 것이다. 정통부는 최근에야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 업계 관계자들과 협의회를 갖는 등 대책마련에 나섰다. 하지만 국내 네트워크 장비업체가 몇 개나 되고 시장규모는 얼마나 되는지 파악조차 못하고 있다. ◇외국기업에 시장 내줄 판= 문제는 한계상황에 내몰린 장비업체들을 국내에서 흡수할 수 없다는 점이다. B사 관계자는 “당장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상황인데 빚더미 기업을 떠안으려는 업체가 있겠느냐”며 “지금은 현금을 최대한 확보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정부가 벤처시장 구조조정을 위해 고육지책으로 추진 중인 M&A 역시 ‘약발’이 먹히지 않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연초 지멘스에 인수된 다산네트웍스처럼 기술력 있는 국내 유망 IT 장비업체들이 다국적기업 등의 M&A 표적에 노출되고 있다. 변재일 열린우리당 의원에 따르면 국내 통신망에서 외국 장비들이 차지하는 비중은 유선 44%, 무선 50%에 달한다. 이런 상황에서 토종 장비업계가 외국계 기업에 넘어간다면 시장잠식은 더욱 가속화될 수밖에 없다. 국책연구기관 관계자는 “매출감소ㆍ주가하락 등으로 기술력 있는 중소 장비제조업체들이 저평가되다 보니 다국적기업의 M&A에 노출되기 쉬운 상황”이라며 “이 업체들을 살리려면 중장기적 산업발전계획 못지않게 단기 투자활성화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